성지 순례기-7 8
예상치 못했던 일로 어제의 일정에 들어있었지만 방문하지 못했던 아빌라를 오늘 다시 방문을 해야 했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 순례단들은 부지런히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읍니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아침 일찍 식사를 끝내고 일행은 버스에 몸을 실었읍니다. 마드리드에서 아빌라까지의 거리는 버스로 약 1시간 반 혹은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지만 오늘의 우리 일정은 반대로 가는 곳이기에 거꾸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기에 시간상으로
배가 걸리는 곳이지만 데레사 성녀를 만나기 위한 우리의 열정이 이를 강행하게 하였읍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마드리드에서 아빌라로 가는 약 2시간을 전세버스의 제일 뒤에 누워서 갔읍니다. 안타까운 것은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지 못하는 것이었읍니다.
우리가 흔히 대데레사라고 부르는 그분은 1515년에 아름다운
조그만 도시 아빌라에서 태어나셨읍니다. 이분은 갈멜 수도원에 입회하여 완덕의 길에 투신하여 신비적 계시를
받는 은총을 누렸읍니다. 성녀는 수도생활을 하면서 수도회의 개혁을 추진하여 수 많은 어려움을 맞게 되었지만
남자와 같은 강인함에서 우러 나오는 불굴의 용기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셨던 분이십니다. 1582년
알바에서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수녀님은 십자가의 성요한, 예수회
창립자인 이냐시오 성인과 함께 교회의 쇄신에 크게 기여한 분으로 그리고 신비주의자로 널리 알려지신 분이십니다.
수도원 바로 아래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모습은 순례단을 안타깝게 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건물들은 당시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아빌라는 프란체스코 성인이 태어나신 아씨시 만큼 원형 그대로가 잘 보존되어
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읍니다.
수녀원의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품들을 통해서 당시의 수녀님들의 생활상을 잘 그려볼 수가 있었습니다. 한 번 들어 가면
나올 수 없는 그분들이 자신들을 만나러 오는 친지들을 만나는 장소인 면회소를 보는 순간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던 이들이
자신의 가족들과 친지들을 만났을 때 그 마음을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본인의 머리 속을 쓰쳐가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뭉클함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봉쇄수도원의 모습과 수녀님들의 삶의 흔적을 순례단원들은 신기한 모습으로 보았읍니다. 한 번 들어가면 평생 바깥 세상을 구경하지 못하고 자신과 이웃을 위한 기도와 노동으로 생활하시는 그분들의 삶이
지금의 교회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읍니다. 제3자가 보기에는 그분들의 외부와 격리된 삶이 애처롭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분들은 하느님과 깊은 일치를 위해서
선택한 자신들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수녀님께서 살아가셨던 수녀원을 방문하면서 지금도 세상의 분주함을 떠나 오직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 속에서
봉쇄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들과 순례단 중의 재속 갈멜회 회원들에게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충만하기를 기도했읍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아빌라를 방문하는 것을
무리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역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의 얕은 생각을 당신의 깊은 사랑으로 큰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모든 순례단원들은 참으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기쁜 마음으로 다음 행선지인 스페인에서는 성모님 성지 가운데 최고의
성지로 여겨지는 사라고사로 향한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산티아고 델 콤포스텔라와 함께 스페인의 2대 성모님 성지로
꼽히는 사라고사는 에브로(Ebro) 강의 뚝 위에 자리하고 있었읍니다.
유명세 그대로 성모님 성지다운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읍니다.
전통에 의하면 성모님께서 승천하시기전 예루살렘에서 살아계시던 당시에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야고버 사도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직접 이곳을 방문하셨다고 합니다. 기원후 40년 1월 2일 밤에 성모님께서는 에브로 강가에서 첫번째 회심한 사람들과
함께 복음을 선포하고 있던 야고버사도를 만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여타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모님의 발현들과는 뚜렷하게 구별될 뿐만 아니라 아래의 특징을
갖고 있읍니다.
첫째로, 파티마, 루르드, 반느 등에서 볼 수 있는 성모님의 발현이 아니라 당신이 살아계시던 당시에 이곳을 직접 방문하셨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이러한 전통의 전형적인 특징은 성모님께서 직접 모든
가톨릭 국가 가운데 최초로 성모님의 성당이 이 사라고사에 지어지도록 기둥을 운반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곳의 필라의 성모님의 대성당(The Basilica of Our Lady of the Pilar) 이
유명하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기둥의 전통과 야고버의 전통의 연관성입니다. 즉 사라고사와 콤포스텔라, 즉 기둥과 야고버는 스페인의 영성이 수세기
동안 반복했던 두 본질적인 축을 형성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성모님의 대성당의 아름다움과 웅장함 그리고 성당 앞의 넓은 광장은 우리 순례단을 압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성당과 성당의 넓은 광장은 바로 이곳이 성모님의 도시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하루에도 수천명씩의 순례객이 방문하는 이 기둥의 대성당은 이 도시의 종교적인 삶을 극대화 하고 동시에
전세계에 사라고사를 규정지우는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성당 앞의 넓은 광장은 성모님 축일만 되면 신자들이 봉헌하는 꽃으로 가득 찬다고 합니다. 이곳의 사람들이 성모님을 얼마나 존경하고 있는지 한 눈에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서 깊은 성모님의 성지에서 우리 순례단은 대성당 안에 있는 소성당에서 당일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또 다시 성모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순례단 중에는 어릴 때 가톨릭 신자로 있다가 개신교로 개종했던 자매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어느 개신교 신자와 마찬가지로 성모님에 대한 많은 오해를 하고 계셨는데 이러한 성모님의 성지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일어난 기적과 신앙운동을 체험하시면서 조금씩 조금씩 어머니의 교회에 대한 관심이 솟아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자매님께서 너무 소외감이나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달라고 성모님께 청했습니다.
이제 우리 순례단은 예수회의 창립자인 이냐시오 성인의 삶의 흔적을 찾아서 몽세랏에 있는 분도회 수도원으로
향했습니다. 장시간의 버스여행과
도보로의 성지 순례는 우리 순례단 모두가 버스에서 곤하게 잠들게 했습니다. 밖에서 비가오고 산을 굽이굽이
넘어가는 험한 길이라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읍니다.
우리 버스의 운전을 맡아 주는 후안은 참으로 착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부탁하는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운전솜씨는 참으로 신기에 가까울 정도였습니다. 운전이 서투른 본인이 보기에는 불가능한 길도 여유있게
가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굳은 신뢰심을 갖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