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요한 5, 36)
태어나서 우리를 길러주시는 부모님을 보고서 이분들이 정말 나의 어머니이고 아버지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나를 안고 젖을 먹이시는 그 사랑이 이러한 질문조차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의 어머니가 나의 어머님이시다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분이 삶으로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삶으로 보여주는 사랑만큼 큰 증거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십니다(요한 3, 16). 톨스토이가 어느날 길을 가다 거지를 보고 적선을 하려고 주머니를 뒤집니다. 그러나 돈이 하나도 없어 멋쩍은 표정으로 거지를 보며 말합니다. “형제님, 미안합니다. 드릴 게 하나도 없군요.” 그런데 거지는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하며 말합니다. “이미 많은 것을 주셨잖아요. 저를 형제라고 불러 주셨죠.” 오늘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그 일이 바로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인 것입니다. 복음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현존을 증명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살아가신 그 삶을 통해서 우리는 참하느님의 현존을 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법은 바로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삶의 멘토임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약 2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멘토링”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멘토링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1200년 경 모험가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기 위해 준비를 하면서 자기 가문을 지킬 수 있는 보호자로 멘토르를 정합니다. 그 후 멘토르는 무려 10년간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스승이자 조언자, 친구, 아버지 같은 대리인으로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합니다. 멘토는 왕의 아들에게 때론 엄한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때론 조언자도 되고 자상한 선생도 되어서 아들이 훌륭하게 성장하는데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커다란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10년 후에 오디세우스 왕이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다시 돌아왔을 때 왕의 아들은 왕이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하게 성장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디세우스 왕은 자신의 아들을 훌륭하게 교육시킨 멘토르에게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역시 자네다워! 역시 '멘토(Mentor)다워!' 라고 크게 칭찬해 주었다.” 고 합니다. 그 이후로 백성들 사이에서는 훌륭하게 제자를 교육시킨 사람을 가리켜 '멘토'라고 불러주는 호칭이 유래 되었다고 합니다. 멘토링은 사람을 세우는 것이고 멘토는 사람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멘토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는 멘토의 자격은 무엇일까요? 밥 빌은 그의 책 “멘토링”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나 멘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멘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멘토링이라는 것은 자기가 중심이 되어 사람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멘토를 받는 멘티 중심으로 그를 돕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훌륭한 멘토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훌륭한 멘티이고 동시에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이웃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멘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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