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이사 65, 17)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요한 4, 48)
‘새롭다’는 것에 생각해 봅니다. 똑 같은 세상이고 물건인데 새롭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변한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욕심이 가득차 있던 사람이 욕심을 버렸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나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주관적인 판단에서 이제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경쟁의 대상으로 다가왔었던 이웃이 이제는 동반자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의 아팠던 기억들이 사라집니다.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던 마음 속에 평화와 감사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새롭워졌습니다. 변화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바로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른댜는 데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자신에게 ‘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을 세상적인 것에서 찾는가 아니면 하느님 안에서 찾느냐에 따라서 삶의 자세가 달라질 것입니다. 하느님은 믿고 싶은데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자체가 하느님의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조건없이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하느님을 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부모님의 사랑을 보면서도 하느님에게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무엇인가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 무언가를 제거하면 언제나 존재해 왔던 세상이 나에게 새롭게 다가옵니다. 마찬가지로 하늘도 나에게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 순간 새 하늘과 새 땅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 삶의 이유를 과거에서 찾는 사람은 현재의 삶의 이유를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의 이유를 미래에서 찾는 사람은 그 이유를 압니다. 과거에는 인간이 있지만 미래에는 하느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나의 존재의 이유가 되는 그 순간 새하늘과 새땅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표징도 이적도 필요가 없습니다. 표징이나 이적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표징이나 이적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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