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843
2016년 11월 29일 화요일
가난의 영성으로 사는 삶(루카 10, 21-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 어졌습니다.(루카 10, 21)
오늘 복음 앞부분을 보면 예수님께서 파견하셨던 일흔 두 제자들이 돌아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님께 자신들의 체험담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사목의 현장으로 파견하실 때 돈 주머니도 여행 보다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시는 것같은 걱정하는 마음으로 파견을 하셨습니다. 제자들 역시 최소한 것만을 갖고서 파견 되었기에 참으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고생들을 많이 했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무사히 돌아와서 기뻐하면서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서 예수님께 보고를 합니다. 제자들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들의 표현, 즉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슴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하고 덧 붙이십니다. 여기서 ‘영’은 악령들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바로 악령들이 복종하는 기적을 행했다고 교만에 빠지지 말고 자신의 구원이 더 중요함을 깨달으라고 가르치십니다.
오늘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에 대한 이유를 살펴보라고 하십니다.
인간은 유혹에 약한 존재입니다 .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어떤 큰 일을 하면 기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하고 나면 빠지게 되는 유혹은 꼭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교만이 끼어듭니다. 이렇게 비교를 하는 순간에 내 삶의 주인은 ‘하느님’이 아니고 이미 ‘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쁨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성령과 기쁨으로 가득차서 기뻐하셨슴을 보게 됩니다.
이 기쁨은 바로 제자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감사를 드립니다. 그 감사는 바로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감사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슬기롭고 지혜롭다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에 의존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스스로 잘 난 사람들이기에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철부지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 의존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난의 영성입니다.
이 가난의 영성은 하느님께 의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바로 자신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능력임을 깨닫는 영성인 것입니다. 교만한 자를 낯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시는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가 인간의 삶을 왜곡시켰습니다. 그 왜곡된 인생 길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왜곡된 삶을 바로잡는 길은 바로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대림시기를 시작하면서 이 가난의 영성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나로 인해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자 다짐합니다. 매일 하루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이를 실천하고자 다짐합니다. 나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하루이기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