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957
2017년 4월 11일 화요일
비우는 삶과 채우는 삶(요한 13, 21-38)
2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요한 13, 21.
30)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도들을 뽑으실 때 유다가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을까 아니면 모르고 계셨을까에 대한 질문이 많이 있습니다. 아시면서도 뽑으셨다면, 그 이유는 반면에 모르셨다면 또 다른 여러가지의 질문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의 단초를 조금이나마 제공해 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요한 13, 21)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신이 있기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누가 당신을 팔아 넘길 것인지를 아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시면서도 순순히 그 일을 받아들이십니다. 수동적으로
강요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닌 당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느껴보고자 합니다. 당신을 3년 동안이나 따랐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당신을 팔아
넘길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께서 가지셨을 그 배신감은 어떠했을까요? 그런데 이렇게 배신감을 갖게 하는 존재가 유다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어쩌면 우리는 더 깊은 배신감을 느끼시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결과를 알고 받아들이시지만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유다는 결과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니다. 비움의 삶과 채움의 삶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가끔 나의 의지적인 행동은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도 그 행동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그러한 영향이 나쁜 것이라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서로 섬김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당신의 마지막 유언으로
남겨 주십니다. 세상적인 야심을 갖고서는 서로가 서로를 섬길 수가 없기에 당신이 직접 이렇게 어떠한
삶의 자세로 섬겨야 하는 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을 배신할 사람이 있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정성스레 씻겨 주십니다. 이렇게 발을 씻겨 주면 깨끗해 지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렇다고 다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참된 섬김의 삶에는 어둠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나약함은 언제나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게 합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깨어서
기도하는 것’이 바로 유혹을 이기는 최선의 도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모두는 예수님께서 세상적인 왕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유다는 그러한
기대가 더욱 컸던 사람이었나 봅니다. 예수님을 따르다 보면 세상적으로 출세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나약하고 초라한 모습에서 그러한 희망은 한 여름 밤의 꿈이었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실망감이 그를 사탄의 유혹에 더욱 쉽게 빠지게 했을 것입니다. 세상적인 욕심이 그의 영적인 눈을 가려 버렸던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갔던 모든 제자들의 눈을 가렸는 지도 모릅니다.
밤으로 들어가는 유다의 등이 보입니다.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음이 다행입니다. 그의 얼굴이 바로 나의 얼굴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섬기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세상적인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 깨어서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적인 채움의 삶이 나의 영적인 눈을 가리지 않도록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하루를 살고자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