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951
2017년 4월 4일 화요일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 삶(요한 8, 21-30)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24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요한 8, 23-24)
인간은 참으로 단순한 존재입니다.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 그
상황에만 집착합니다. 어움의 또 다른 면에 밝음이 있슴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겉만 보고 담겨진 의미를 보지 못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 함은 자신이 갖고 있는 주관적인 사고의 틀을 객관적인 사고의 틀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판단 기준을 하느님의 판단기준으로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자기 중심의 생각을 하느님 중심으로 바꾸면
여태까지 내가 갖고 있던 삶의 수수께끼들이 하나씩 하나씩 풀리기 시작합니다. 마치, 고난의 자리 가장 가까이에 위로가 있다는 것을, 슬픔의 자리 가장 가까이에 기쁨이 있슴을, 불평의 자리 가장 가까이에 감사가 있고, 원망의 자리 가장 가까이에 찬양이 있슴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그 날을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서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요한8, 21)는 이 밀씀이, 어제가 있었고 지금이 있기에 당연히 내일도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는 다시 한번 ‘지금’의 중요성을 깊이 새기게 합니다.
똑 같은 말씀을 수 없이 듣고 읽지만 매번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 말씀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똑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사람마다 다르게
보는 경우가 많음을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힘들지만 시간이 가고 경험이 쌓이면서 이해가 됩니다. 똑
같은 사고를 냈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냈을 때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냈을 때 그 사고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다름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에 속하는 사람은 자기의 주관적인 판단기준을 갖고서 사람을 판단합니다.
주관적인 판단 기준이라고 하는 것은 일관성이나 객관성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항구적이지
않고 이해관계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인간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아래에서 왔고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오셨다고 합니다. 아래에서
오는 것과 위에서 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래에서 온 사람은 아래에서부터 키 재기를 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위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온 사람은 아래로 내려 갈려고 합니다.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사람과 자신을 낮출려고 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아래에서 온 사람은 세상에 속하지만 위에서 온 사람은 하늘나라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하늘에서 온 사람은 세상에서 자신을 낮춤으로서 상대를 올리지만 아래에서 온 사람은 상대를 낮춤으로서 자신을
올리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구원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올리는 것에서 찾아옵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세상에 살기 위해서 필요한 세상적인 논리로
살지 않고 위에서의 논리로 살아갑니다. 상대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놓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렇게 상대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놓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철옹성 같이 굳어진 세상적인 논리의
틀을 깰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죄에서부터 해방될 수가 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닌 영원의 시작으로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요한 8, 29) 고 하시는 이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지도록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자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