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901
2017년 2월 4일 토요일
미래의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삶(마르 6, 30-34)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 31)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말을 갖고서 묵상을 했습니다. 과거의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것과 현재의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 보는 것, 그리고 미래이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 보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미래의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인간은 누구나 주님 안에서 변화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 보기에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닫혀진 시각입니다. 하지만 미래의 시선은 열려진 시각입니다. 가능성을 인정하기에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부정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이며 희망의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각의 객관성을 유지하고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상에 파묻혀 사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생각하는 주간을 갖는 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매년 일정한 기간을 정해 놓고 피정을 합니다. 하느님의 생각이나 시선으로 일상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아침에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솔로몬에게 하셨던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는 질문을 하십니다. 솔로몬은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열왕 상 3, 9)하고 대답했습니다. 왜 듣는 마음을 달라고 했는지에 대해서 당신의 백성을 잘 통치하기 위해서라고 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편안하게 쉬어야 합니다. 바쁜 일상에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쁘면 바쁠수록 더욱 주님 안에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바쁘게 지내다 보면, 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미국에서 사목을 하면서 많이 듣는 이야기가 일주일에 하루는 꼭 일상 업무와 떨어져서 쉬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의 정서로는 자신이 하던 일에서 떨어져 쉰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은 일터에 가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휴가를 떠나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기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에 대한 관심을 놓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예수님께서는 저에게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일 열심히 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매일 쉬는 것 같기도 하고 일과 쉼의 경계가 없이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듣는 것의 중요함에 대해서도 깨닫습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아담이 하와에게 어떻게 이 말씀을 전했는지는 모르지만 뱀의 질문에 하와는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과 다르게 전하고 있슴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사업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듣고 전달한다는 것은 단지 그 말씀을 입으로만 전달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삶으로 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세상으로 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는 일을 하고 돌아와서 자신들이 한 일들을 보고합니다. 이들의 보고를 들은 예수님께서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적으로 외딴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떨어진 곳, 나의 일상과 떨어진 곳, 하느님 만을 생각하고 하느님 안에서 쉬는 장소를 말하나 봅니다.
현재 저희들의 기준으로 받아 들인다면 일종의 피정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세상의 떼를 씻어내어 다시금 하느님의 옷으로 갈아입는 재 충전의 시간을 말할 것입니다.
창세기 2장 2-3절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하느님께서는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 날에 쉬셨기 때문이다.”(창세 2, 2-3) 하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6일 동안 일을 하시고 난 이후에 이렛날에는 쉬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말은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는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복을 내리시는 것과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이 나란히 나오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제7일이 특별히 복된 날 임과 동시에 거룩한 날이기 때문에 그 날을 거룩하게 지내야 함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날을 온전히 하느님께 드리지 않고 다른 날들과 다름없이 자신을 위해서나 세속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고 이 날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미래의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보기 위해서 일상에서 벗어나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갖도록 노력해야 겠다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