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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07 16:03
   최후의 심판에 대한 비유적인 이해(마태 25장 31-46) - 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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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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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926
2017년 3월 6일 월요일
최후의 심판에 대한 비유적인 이해(마태 25장 31-4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 45)

살아가면서 매 순간 걱정과 염려에서 해방된 삶을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유한함에서 유래하는 이 염려와 걱정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삶은 오로지 주님 안에서 만이 가능한 삶입니다.  완전자에게 오로지 의탁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이렇게 인간의 유한함 때문에 생겨나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눈과 귀와 입술과 그리고 마음을 열고 살라고 하십니다. 열린 마음은 나의 모든 감각기관을 주님께로 향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비유라고도 하고 양과 염소의 비유라고도 합니다. 25장에는 종말에 대한 세가지의 비유가  나옵니다. ‘열 처녀의 비유’ ‘탈렌트의 비유’, 그리고 오늘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대한 말씀을 말씀하시면서 이 세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이 세 비유가 담고있는 뜻을 잘 이해함으로 해서 종말에 대한 더 나은 이해와 준비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열려진 마음은 바로 종말에 대한 더 나은 이해와 준비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먼저, 열 처녀의 비유는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시간과 세상적인 시간의 오해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시간은 ‘일년이 천 년같고, 천년이 일년 같은 시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은 바로 ‘직선적인 시간’입니다. 따라서 신랑이 오지만 그 시간은 우리의 시간에 대한 개념 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이 아닌 하느님의 시간 안에서 인간이 예측하지 못하는 시간에 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랑의 시간 개념 안에서 오는 신랑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탈렌트의 비유’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탈렌트를 잘 활용해야 함을 알려줍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능력에 합당하게 탈렌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착하고 성실한 종은 주인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고 주인과 함께 하는 기쁨을 나누게 되지만 악하고 게으른 종은 가진 것마저도 빼앗기고 바깥 어둠 속으로 내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만약에 손해를 보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열매는 인간의 생각이나 관점에 의한 열매가 아닌 하느님의 생각으로 결정되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주인이 맡긴 것을 성실하게 잘 활용해서 그것을 주인께 되돌려 준다는 것입니다. 주인의 것을 나의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잘 활용하여 주인에게 여분의 것과 함께 돌려주는 종이 착한 종이고 성실한 종입니다. 

세 번째가 오늘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는 ‘믿음’과 ‘행동’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한 개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흔히들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는다.’ 고 하지만 이 비유에서는 ‘실천’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극단적인 믿음으로만 즉 기복신앙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삶’이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믿음이 없는 극단적인 ‘행동’은 로마서의 바오로사도의 말대로 ‘율법주의’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동이 함께 함으로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자신에게 해 준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강조합니다.  믿음에 기초한 사랑의 실천이 바로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종말론에 대한 이 세 비유는 베드로 전서 4장 7절에서 10절까지의 내용을 생각하게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여기서 말합니다. 종말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먼저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 사랑은 많은 죄를 덮어 준답니다. 그리고 불평하지 말고 서로 잘 대접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이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라고 합니다.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종말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종말이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 종말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하고 고백하는 그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된다면 ‘종말’이나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기다림의 대상이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는 그날이 바로 우리의 삶의 목적이고 지금 이 순간우리가 대면하고 있은 세상적인 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마지막이 있고 출발점이 있으면 결승점이 있습니다. 인생에도 마지막이 있기에 이 순간의 삶이 중요합니다. 그 마지막이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시간의 끝은 바로 주님 안에서의 새로운 시작임을 잊지 않고자 합니다. 나의 일상에서 주님을 발견하는 살을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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