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920
2017년 2월 27일 월요일
율법에서 사랑으로 (마르 10.17-27)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10, 27)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완전함을 추구합니다. 완전한 행복이 아니기에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일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려는 그 노력이 삶에 대한
에너지를 준다는 사실일 깨닫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을 하면 할수록 세상적인 행복과 주님 안에서의
행복과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슴을 보게됩니다.
오늘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불 완전한 행복이 아닌 주님 안에서의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자신의 힘으로 불가능하기에 모든 것이 가능한 하느님께 의탁하라고 하십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한 삶이란 좀 더 주님께 의탁하는 삶일 것입니다. 주님께
의탁한다는 것은 주님이 나의 삶이 주인이 되는 삶을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완전함’의
뜻을 살펴봅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에서 ‘완전함’의 의미는 하느님을 지금보다 좀 더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거룩함’의
의미도 알 수가 있습니다. 좀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삶이 바로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당신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여기서 이 사람이 찾고자 하는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안에서 우리가 얻게되는 참 생명의 삶을 말합니다. 하늘나라에서 누리는 삶일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란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선 한일’이라고 말합니다. '선한 일'이란 하느님의 본질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본질이 바로 선함과
사랑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한 일’이란 바로 하느님의 본질이 드러나는 일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일일 것입니다. 이 사람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은 바로
계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십계명의 1-3계명은 하느님과 관련이
있는 계명입니다. 그리고 4계명부터는 인간관계와 관련된 가정, 사회, 그리고 이웃사랑과 관련이 있는 계명들입니다.
십계명의 수동적인 실천이 아닌 능동적인 실천의 중요성을 예수님께서는 강조하십니다. 4계명부터의 계명들을 우리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으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새계명으로 요약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십계명을 잘 지켜왔다고 대답합니다. 그 사람의 말하는 태도를
봐서는 아마도 그 말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잘 지켜온 그 계명은 바로 구약의 율법입니다. 이 부자 청년의 ‘부’를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재물로만 생각한다면 너무나 협의의 이해로 끝날 수 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가
갖고 있는 부는 재물을 포함한 율법에 대한 이해도와 이의 실천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자신은 이러한 계명들을 어려서부터 지켜왔다는 말씀을 들으시고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면서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그의 이러한
노력을 받아들이시고 인정하고 계셨슴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계명들을 잘 키켜왔슴에도 부족한
것은 바로 그가 갖고 있는 것들을 팔아서 이웃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나누어 주라고 하면 될 것인데 굳이 예수님께서는
그가 갖고 있는 것을 팔아서 나누어 주라고 하셨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판다고 하는 것을 내어 놓고 받는 것입니다. 교환의 의미입니다. 그가 갖고 있는 것을 판다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지켜온 그 십계명을 말할 것입니다. 이제 그 십계명을 팔아서 새로운 계명인 사랑의 계명을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랑이 없는 율법을 버리고 사랑이 충만한 율법을 소유하고 그것을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생각하던 메시아를 버리고 새로운 개념의 메시아를 받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것을 버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기존의 생각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시 한번 보게 됩니다.
율법을 버리기가 어려웠던 그 청년은 예수님으로부터 떠나갑니다. 그 떠나가는 청년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
마음에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거리가 가장 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
인간마다 자신은 스스로 계명들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살고 있겠지만 이 계명들 가운데서도 사람마다 자신이 지키기 어려운 계명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이 청년에게는 자신이
지켜왔던 율법을 새로운 사랑의 법으로 바꾼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재물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고자 다짐합니다. 동시에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10, 27)는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