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684
2016년 5월 28일 토요일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질문(마르 11, 27-33)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마르 11, 28)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스스로 지적인 교만에 빠져있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유한함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유한한 인간은 질문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가르침을 청하는 질문이 있는가 하면 악의적으로 상대의 부족함을 드러내기 위한 질문이 있습니다. 자신의 우위성을 드러내는 질문입니다. 또 한가지는 오늘 복음에서 처럼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얻는다고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면 부모님들이 오늘은 무슨 질문을 하고 왔느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무엇을 배워왔느냐가 중요한 우리 부모들과 오늘은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하였느냐가 중요한 유태인 부모들과의 자식 교육에 대한 큰 차이가 바로 지금의 이스라엘과 우리와의 차이인가 봅니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에 대한 많은 질문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지적인 욕망을 채우기우한 질문이 아닙니다. 완전하신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을 알기 위한 질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잘 알고 그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질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의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산책을 하고 계시는 예수님께 와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마르 11, 28) 하고 질문을 합니다. 여기서 이런 일들이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고 가르치신 일들이라고 협의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광의로 보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을 말할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이 사람들의 질문에는 가시가 박혀 있슴을 보게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해오신 모든 일들이 이들의 눈에는 가시였나 봅니다.
가시가 박힌 질문에는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의도를 파악하시고서 이들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이 셰례를 베풀었는데 그는 누구로부터 권한을 받았느냐? 하고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려고 했던 이들이 역으로 곤경에 빠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과 논쟁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드십니다. 그런데 이 답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대답의 순간에도 하늘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을 봅니다.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은 “모르겠다”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께서도 답을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아침에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악을 선으로서 이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겉으로는 악이 이기는 것 같이 보여도 결국은 선이 악을 이깁니다. 여기서 악을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로지 선함으로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 시간이 걸리고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길을 가야 합니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말 속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앟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꼭 가려야 합니다. 그것도 하느님 앞에서 떳떳한 수단과 방법을 쓰야 할 것입니다. 바로 집회서의 저자는 지혜을얻기 위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아래와 같이 알려줍니다.
13 내가 아직 젊고 떠돌이 생활을 하기 전에, 나는 기도 가운데 드러내 놓고 지혜를 구하였다. 14 내 발은 올바른 길을 걸었으며, 젊은 시절부터 지혜를 찾아다녔다. 16 나는 조금씩 귀를 기울여 지혜를 받아들였고, 스스로를 위해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집회51, 13. 14. 16)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지혜의 주인이신 주님을 찾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자신의 유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이를 고백하며 지혜를 찾는 일에 자신을 내어 놓는 하루를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