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683
2016년 5월 27일 금요일
하느님을 믿어라 (마르 11,11-25)
“하느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 22-24)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기를 원하지만 세상은 우리의 눈을 자꾸 가립니다. 나는 누워서 하늘을 보는데 어떤 사람은 서서 누워 있는 나를 바라봅니다. 내가 하늘을 보는 것을 막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하느님을 보는 것을 막는 장애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쩌면 본인도 장애물일 수 있슴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깨어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서 저주하시는 장면을 봅니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는 본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성적인 분석이 아닌 주님의 뜻을 바라본다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열매는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쉬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겉은 화려한데 실속이 없는 무화과 나무의 모습을 봅니다. 잎은 무성한데 열매는 없습니다. 겉으로의 삶은 화려한데 실천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성전은 성전 다워야 한다는 예수님의 뜻을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봅니다. 성전이 성전답기 위해서는 외적인 거룩함보다는 내적인 거룩함이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성전에 제물을 바치게 한다는 미명하에 성전을 장터로 만들어 가는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세상적인 명예와 영화를 추구하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외적인 제물이 아닌 마음을 바치는 것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성전을 거룩하게 하는 마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는 그 모습이 바로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참 뜻임을 깨닫습니다.
본질을 살아가지 못하면 어떠한 열매도 맺지 못함을 배웁니다. 본질을 살아가지 못하면 거룩한 성전마저도 세상의 논리가 판치는 장소로 타락시키는 모습을 봅니다.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기도는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아름다운 기도일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바로 산을 바다로, 바다를 산으로도 바꿀 수 있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바치는 기도의 효과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스테파노의 순교 후에 초대교회의 사람들이 박해를 받아서 흩어집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받는 박해를 보면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있었는데 인간은 자신의 고향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박해를 통해서 세상 끝까지 흩어놓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그 곳에서 주님을 전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어 갑니다. 고통을 받는 그 순간에는 고통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그 고통 속에 담겨진 깊은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비록 이해하지 못하는 시련에 직면하게 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그 고통 속에 담겨진 하느님의 축복을 깨닫는 우리가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찾고 하느님 믿는 하루를 살고자 다짐합니다. 지금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은총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