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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5-20 05:35
   하느님께서 맺어 주시는 삶(마르 10, 1-9) - 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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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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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677

2016년 5월 19일 금요일

하느님께서 맺어 주시는 삶(마르 10, 1-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9)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순간 결단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잘 결단을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 결단의 순간마다 ‘왜’ 이러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가가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내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될 때 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유, 즉  ‘왜’ 라는 질문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살면서 어려운 시기를 거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그 어려움의 종류와 질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이 어려움을 남과 비교해서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어떤 이에게는 객관적으로 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참으로 심한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감기는 당연히 암보다는 가벼운 병일 뿐만 아니라 고통도 덜합니다. 하지만 이를 견디는 사람에 따라서 오히려 감기에 걸린 사람이 암에 걸린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가족들의 불이해와 공동체에서의 소외 등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당할 때 끝까지 현명하게 이러한 어려움을 잘 견뎌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도에 포기하고픈 유혹이 생겨도 잘 참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하느님 안에서 이러한 유혹을 이겨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때문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과 하느님 때문에 ‘노’라고 대답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응답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식별’이 필요합니다.  이 ‘식별’의 기준이 바로 ‘왜’라는 질문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하느님으로부터의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세상과 하느님을 두고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지식이나 정보에 의한 선택은 결단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믿음에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의지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 아니면 “아니오”의 결단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사이들은 일부 다처제를 묵인했고 이혼과 재혼을 쉽게 허락했었습니다.  신명 24, 1을 보면, “어떤 남자가 여자를 맞아들여 혼인하였는데, 그 여자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 눈에 들지 않을 경우, 이혼 증서를 써서 손에 쥐어 주고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근거해서 남편은 이혼장 을 만들어 아내에게 건네주고, 그 순간부터 아내는 쫓겨나게 됩니다. 이혼장에 사유를 쓸 필요는 없었고, 남편 아무개가 아내 아무개를 소박하니 다른 남자가 데려가도 무방하다는 내용을 적은 다음에 남편과 두 증인이 서명하고 장소와 날짜를 기록하면 되었습니다. 이혼을 어떻게 하느냐에 관심을 가졌던 그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혼 불가를 선언하셨습니다(마태 5,32). 우리에게 ‘왜’ 이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혼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시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하지만 이 선물을 항구하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비율이 점점 줄어듭니다. 이유는 사랑에 의한 결혼보다는 조건에 의한 결혼이 더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건에 의한 결혼은 조건의 사라짐에 따라서 사랑도 사라질 것입니다. 최근에는 더욱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조건이 사랑에 우선하는 결혼이 더 많아졌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인격적인 만남의 결혼이 아닌 도구적인 만남의 결혼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이 사랑의 결합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의 전형을 따르는 사랑의 실천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을 상대를 위해서 내어놓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우리의 결혼을 더욱 알차고 충만하게 만들어갈 것입니다. 순간 순간 다가오는 인간적인 유혹도 극복하게 해 줄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주시는 하느님과 우리를 둘로 분리시키려고 교묘하게 작용하는 사탄을 바라봅니다. ‘어떻게’에 집착하지 않고 ‘왜’라는 질문을 마음에 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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