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674
2016년 5월 17일 화요일
첫째가 꼴찌가 되는삶 (마르 9, 30-37)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야고 4,8. 10)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 35)
오늘 저에게 하느님께 가까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로 다가간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묵상합니다. 야고버 사도는 저에게 세상과 우애를 쌓는 삶이 바로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야고 4, 5)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과 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까이 간다고 하는 것은 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우애를 쌓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느님께 복종하고 악마에게 대항하는 (야고 4, 7)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첫째가 되는 삶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파견 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파견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파견 받은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그 사명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 이외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원합니다. 교만은 사람을 파멸에로 이끌어 간다고 말합니다. 교만한 사람의 주변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잘났다고 하는 사람에게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외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여주는 사람들에게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먼저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물리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버선 발로 그 사람을 맞기 위해서 달려가시는 분이십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아들을 맞기 위해서 달려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봅니다. 옷을 입혀 주시는 아버지 신발을 신겨 주시는 아버지 그리고 반지를 끼워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봅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 35)
내가 하느님 때문에 꼴찌가 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면 하느님께서 나를 첫째로 만들어 주신답니다. 그런데 키재기를 해 보면, 지상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보면 가장 낮은 사람이고 지상에서 제일 낮은 사람은 하늘에서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어쩔 수 없이 꼴찌가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 때문에 내가 꼴찌를 선택해야 합니다. 종과 같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인의 의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꼴찌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비움의 영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비움이 하늘에서 채움이 됨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악마에게 저항하고 하느님께 순명하는 삶을 살고자 다짐합니다.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하루를 살고자 다짐합니다.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는 하루를 시작하고자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