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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21 15:23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에(요한 20, 1-2. 11-18) -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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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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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731
2016년 7월 22일 금요일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에 (요한 20, 1-2. 11-18)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요한 20, 17)

오늘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성녀를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굿뉴스에 나오는 성녀에 대한 소개입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는 복음서에서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루카 8,2)로 묘사되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마지막까지 십자가 곁을 지켰으며(요한 19,25), 저녁때가 되어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요셉이란 이가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예수님의 시신을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실 때도 그 맞은쪽에 있었고(마태 27,61),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 몇몇 여인과 함께 무덤으로 달려가 그리스도의 시신이 없음을 발견했으며(루카 24,3), 무덤 밖 동산에서 슬피 울고 있을 때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는 부활하신 스승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할 사명을 받고 제자들에게 가서 그 소식을 전하였다(요한 20,11-18).

복음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또 다른 마리아로는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루카 7,36-50)와 성녀 마르타(Martha, 7월 29일)의 동생인 베타니아의 마리아, 그리고 클레오파(Cleophas)의 아내 마리아(4월 9일)가 있다. 이 중에서 죄 많은 여자와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동일 인물인지 성경에 분명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방 교회 전통에서 오래 전부터, 특히 교황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604년) 이후로는 위의 두 마리아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동일한 인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서방 교회 전승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여인으로서 통회와 관상의 이상적인 모델로 여겨왔다. 실제 많은 예술가들이 이런 모습의 성녀를 그림으로 많이 표현해왔다.

로마 순교록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예수님 부활의 첫 증인인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인물로 보고 있다. 중세 시대에 있었던 세 명의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사도 성 요한(Joannes)과 약혼한 사이로 나오기도 한다. 또 성령 강림 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사도와 함께 에페수스(Ephesus)로 가서 전교하다가 그곳에 묻혔다고 전해온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오빠인 성 라자루스와 동료들과 함께 배를 타고 표류하다가 프랑스 남서부 지방에 도착해 마르세유(Marseilles)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 때 순교했다고도 한다.

2016년 6월 3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예수 부활의 첫 목격자인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의무 기념일을 축일로 승격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경신성사성 차관 아서 로시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단히 사랑했고, 아울러 그분에게 사랑받은 이 여성의 중요성이 자비의 희년에 새롭게 조명되길 바란다.”며 “이 결정은 여성의 존엄성과 새로운 복음화, 그리고 하느님 자비의 위대함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라고 밝혔다. 이어 “성녀는 특히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 소식을 알림으로써 그들이 용기를 내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도록 했다”며 “새로운 복음화의 여정을 걷는 교회는 성녀의 이런 특별한 역할에 주목하고 전례를 통해 공경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요한 20, 15)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중에 예수님의 아버지는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바로 당신의 하느님이 우리의 하느님’이심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당신과 우리를 같은 형제 자매로 말씀하십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의 힘이 되시는 나의 하느님’ 이라는 찬양곡의 가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바로 나의 하느님이 참으로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이 아니라 ‘참 나의 하느님’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 예수님 앞에서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여인아, 왜 우느냐?”하는 예수님의 질문이 성실하고 일관되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두고서 실망하는 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의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 38)는 말은 저에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을 줍니다. 매 순간 매 순간 어떻게 거듭나야 하는 지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삶의 조건으로 성령을 선물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 성령의 선물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서 베드로 사도는 회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 받아야 한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를 더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 받는다는 것입니다. 

회개와 세례가 바로 성령을 받는 조건인 것입니다.  내가 주인인 삶에서 하느님께서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무질서한 생활에서 질서잡힌 생활로의 전환이 회개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무질서하게 만듭니까? 욕심입니다. 교만입니다. 집착입니다. 세상이 중심이 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에서 질서잡힌 삶으로의 전환의 중심에는 감사함이  있습니다. 

감사는 사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가장 좋은 무기입니다.  감사는 겸손함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사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감사가 없으면 불평과 불만이 생기지만 감사는 우리가 모든 불평과 불만에서 해방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라는 베드로와 사도요한에게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 소식을 알린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들과 함께 무덤으로 되돌아 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알지만 베드로와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슴을 깨닫지 못합니다. 사도들이 돌아간 뒤에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 때문에 무덤 밖에서 울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규정지어 놓았던 예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를 찾느냐?” 하는  이 질문은 우리에게 너의 생각 속에 규정지어 놓은 예수님을 찾지 말고 예수님의 눈으로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실수하는 것은 불완전한 우리가 완전하신 하느님을 우리의 생각과 관념으로 한정지을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녀에게 예수님께서 “마리아야!”하고 부르십니다. 비로소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른다.’(요한 10,3)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요한 10, 14)

착한 목자의 양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낯선 목자를 따라가는 그러한 양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매 순간 회개하며 죄를 용서받는 삶이 바로 낯선 목자, 즉 사탄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 자신의 목자를 알아보는 삶을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회개로 성령을 선물로 받는 하루를 살고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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