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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5-29 22:04
   희망의 끝은 포기하기 때문이다.(마르 12, 1-12) - 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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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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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685

2016년 5월 30일 월요일

희망의 끝은 포기하기 때문이다.(마르 12, 1-12)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마르 12, 10)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망은 실패하기 때문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기 때문에 끝나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희망은 믿음에서 생겨납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으면 포기하게 됩니다. 배신하게 됩니다. 눈 앞의 이익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한 삶을 사는지를 알려줍니다. 

주인이 자신의 포도 밭을 소작인들에게 맡기고 멀리 떠났다고 합니다. 떠나기 전에 이 주인은 자신의 포도 밭에 울타리도 둘러치고 포도 확도 파고 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외부의 침입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하지 않게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포도밭 주인의 소작인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볼 수가 있습니다. 소작인들은 오로지 포도 밭만 가꾸면 됩니다. 그리고 ‘멀리’ 떠났슴을 강조합니다. 이의미는 모든 것을 소작인들의 손에 맡겼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참으로 큰 신뢰이며 믿음입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의 태도는 자신의 주인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주인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주인의 것을 자신들의  것인양 처신을 합니다. 결국에는 자신들이 소유할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맡겨진 재산을 배신하며 폭력을 사용하며 탈취하는 모습입니다. 절대적인 신뢰에 완벽한 배신으로 응답하는 모습입니다. 

주인이 소작인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었다는 것의 의미는,  자신들의 기본적인 의무만 충실하면 이 모든 것들을 소작인들의 손에 맞기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인의 마듬을 알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소작인들은 자신들의 기본적인 의무마저도 소홀하게 됩니다. 

소작인들의 행동을 보면서 나를 바라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신뢰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 전 삶의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신 하느님께서는 나를 얼마나 신뢰하시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하느님께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믿음은 희망을 갖게 합니다. 믿음은 자신의 실패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합니다.  주인은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믿어준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너의 주인은 너의 실패를 용서하지 않으셔, 너의 실패를 숨기고 덮어야 해’ 하면서 유혹합니다. 사탄은 믿음을 포기하게 합니다. 이러한 포기는 우리를 더 이상 희망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포도밭 주인의 소작인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볼 수가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죄는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잘 듣는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강의를 잘 듣는 것과 어머니 말씀을 잘 듣는 것과는 의미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한 예로 우리는 ‘부자’들을 보고 저집은 ‘참 잘 사는 집’이라고 말하고 ‘가난한 집’을 보고서는 ‘못사는 집’이라고 말합니다. 엄청난 의미의 차이가 있슴에도 불구하고 의식없이 그렇게 써 왔던 것입니다. 말이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그 생각이 나의 삶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은 자신의 지식을 증가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듣는다는 의미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나의 삶을 바꾼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나의 행동양식을 어머니의 뜻에 따라서 바꾸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부자는재산이 많은 것이지만 ‘잘 산다는 것’은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난한 것은 재산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못 산다는 것’은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엄청난 의미의 차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구분이 없이 자연스럽게 혼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혼용이 선과 악의 구분마저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이 목적이 되는 삶과 내가 목적이 되는 삶의 혼용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죄는 바로 하느님이 주인이 되는 삶을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여태가지는 하느님이 나의 삶의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자신이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됩니다. 이런 엄청난 죄악의 삶을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의식없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인가를 소작인들 스스로가 답을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믿음과 확신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나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지만 내가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희망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희망은 믿음에서 오고 불신은 희망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내가 희망을 갖는 삶은 바로 마태오 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될 것이다.”(마태 6, 33)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먼저 찾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먼저 찾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하루,  나를 신뢰해 주시는 주님께 희망을 갖는 하루를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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