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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2-27 05:20
   욕심은 죄와 두려움의 씨앗(마태오 21, 33 - 46) -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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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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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605

2016년 2월 26일 금요일 

욕심은 죄와 두려움의 씨앗(마태오 21, 33 - 46)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마태 21, 42)

두려움을 갖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소유에 집착하다 보면, 소유하기 위한 두려움과 소유하고 있는 것을 빼앗길 까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하게 됩니다.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특징은 바로 는 ‘세상적인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아침에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집착과 소유의 삶에서 해방되는 삶을 살아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독서,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그는 특별히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과도한 사랑이 형들이 요셉을 질투하게 만듭니다. 그 질투는 요셉을 죽이게 하는 마음을 먹게 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닢에 팔아버립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일려고 마음을 먹었다가 결국에는 상인들에게 팔아넘기는 과정들을 보면서 요셉을 편애한 야곱의 행동,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함없이 자신의 꿈을 천진난만하게 이야기하는 신중치 못한 요셉의 행동을, 그리고 형들의 요셉에 대한 악의에 찬 행동들을 보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에 떳떳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로마 8, 28)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함을 알게 됩니다. 

형들에게 버림을 받은 요셉이 바로 형들을 구하는 기막힌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크게는 이스라엘이 버린 요셉이 이스라엘을 구하게됩니다. 하느님의 신비인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생각은 다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어린자식들의 생각과 부모들의 생각이 다른 것과 같은 이유일 수 있습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과 생각이 없는 사람과의 생각도 다릅니다. 

신약에서의 요셉은 자신의 약혼녀의 임신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돌에맞아 죽게 되는 그러한 절대절명의 순간에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자신이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마리아의 문제를 조용히 처리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자유를 남용한 아담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선악과를 따먹은 일을 하느님과 자신의 여자인 하와에게 전가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잘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죄는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잘 듣는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강의를 잘 듣는 것과 어머니 말씀을 잘 듣는 것과는 의미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한 예로 우리는 ‘부자’들을 보고 저집은 ‘참 잘 사는 집’이라고 말하고 ‘가난한 집’을 보고서는 ‘못사는 집’이라고 말합니다. 엄청난 의미의 차이가 있슴에도 불구하고 의식없이 그렇게 써 왔던 것입니다. 말이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그 생각이 나의 삶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은 자신의 지식을 증가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듣는다는 의미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나의 삶을 바꾼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나의 행동양식을 어머니의 뜻에 따라서 바꾸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부자는재산이 많은 것이지만 ‘잘 산다는 것’은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난한 것은 재산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못 산다는 것’은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엄청난 의미의 차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구분이 없이 자연스럽게 혼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혼용이 선과 악의 구분마저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이 목적이 되는 삶과 내가 목적이 되는 삶의 혼용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죄는 바로 하느님이 주인이 되는 삶을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여태가지는 하느님이 나의 삶의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자신이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됩니다. 이런 엄청난 죄악의 삶을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의식없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밭 주인이 소작인들에게 자신의 포도밭을 맡기고 멀리 떠납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맡기시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최초의 인간이 죄를 짓는 이유는 자신이 하느님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소작인들이 주인이 자신의 몫을 받기 위해서 보낸 종을 죽인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빌려서 쓰고 있는 땅의 주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이러한 유혹은 지금의 사회가 갖고 있는 모든 문제의 뿌리입니다. 

인간에게는 값없게 보이는 일이 하느님께는 귀한 일이기도 하고 그 반대의 일이 되기도 합니다.  바로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마태 21, 42)”라는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눈과 마음과 생각을 입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말을 잘 듣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상대를 닮아갑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말씀을 잘 듣고 생각과 마음과 눈을 닮아갈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으며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삶, 하느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하루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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