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 메인홈 로그인 | 메일재인증 | 업데이트 알림 | 회원가입 | 관리자 문의 |  사이트맵 |  6 (회원 0)  
ApacheZone
등록된 배너가 없습니다.
등록된 배너가 없습니다.
Home >  강론및기고 >  주일강론
 
작성일 : 13-02-19 21:14
   김 여준 루치아노를 주님의 품에 보내며
트랙백
 글쓴이 : 정건석
    조회 : 2,085  
이글을 내twitter로 보냅니다 이글을 facebook으로 보냅니다 이글을 미투데이로 보냅니다 이글을 다음요즘으로 보냅니다  


여준이를 주님의 품에 보내면서..

2013 2 19

본당에서

 

김 여준 루치아노 형제의 갑작스런 죽음은 저에게는 큰 충격이고 놀라움이었습니다비록 얼마동안은 성당과 떨어져 있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성당에서 복사로 그리고 여러가지의 일들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던 형제였기에 더욱 가슴이 아프고 슬프기도 합니다. 한참 일을 할 나이에 주님의 품에 안긴 이 형제에게 주님의 자비와 사랑이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또한 자식과 친구를 갑작스럽게 주님의 품으로 보내고 놀라움과 슬픔 속에 있는 여러분들께도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래 전에 동아일보에서 ‘산자들의 장례식’이란 칼럼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칼럼에는 당시에 보도된 뉴욕타임지의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장례식을 미리 치른 기사를 인용하면서 ‘죽음에 대한 참된 인식이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 칼럼의 내용 중에 나오는 한 사람은 자신의 장례식을 미리 치르면서 그 이유를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언제든지 죽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하면 더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죽음이란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의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대면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어떤 분이 “인간 만이 죽음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바쁜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러한 죽음이 바로 삶의 저편에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그림자임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분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르침은 바로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바른 인식을 갖고 이를 의식하면서 살아 간다면 좀 더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은 삶에 대한 겸손함과 진지함을 갖고 살아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바른 인식은 바로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완전자와 함께 하는 삶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해 줍니다. 따라서 죽음을 참으로 잘 준비하는 것이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임과 동시에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죽음을 대면하면서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 여하에 따라서 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 가기도 하고 그와는 반대의 삶을 살아 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면하게 되는 죽음만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죽음은 일상생활 안에서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겸손과 비움의 삶의 실천을 통해서도 체험하게 됩니다. 자신을 죽이고 비우는 삶은 바로 자신을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죽음의 총합으로 궁극적으로 대면하게 되는 죽음을 통해서 영원과 완전에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해 줍니다. 즉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게할 뿐만 아니라 준비된 죽음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가장 큰 유산이자 가르침인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헤어져 살던 사람들을 다시 모이게 하는 큰 힘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인해서 등을 돌리고 살아왔던 사람들을 다시 마주 보게 하는 큰 힘을 갖고 있습니다.

흔히들 십자가의 참된 의미는 바로 종으로는 하느님과 인간, 횡으로는 인간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참된 화해가 바로 영원한 삶의 또 다른 차원의 삶의 전제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그 순간에 영원한 삶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전 삶을 통해서 죽는 삶이 바로 영원히 사는 최선의 준비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은 달리 표현하면 불완전함에서 완전으로 나아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에 안주하지 않고 큰희망을 갖고서 완전에로 나아갈 수 가  있습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죽음의 큰힘이 자신에게 다가 올 때 비로소 영원한 삶을 위해서 죽지 않고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반성합니다. 예수님의 삶의 교훈이 우리에게 체화 되어있지 않다면  영원을 향한 우리의 삶은 한낯 신기루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좋은 것과 나쁜 것)을 당신 안에서 선으로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루치아노 형제의 주검 앞에서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봅니다. 비록 지금은 루치아노 형제의 주검 앞에서 슬퍼하고 힘들어 하는 우리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의 죽음을 통해서 당신의 더 깊은 사랑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 자리가 바로 우리의 신앙으로 주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하는 은총의 자리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다시 한번 루치아노 형제님께서 주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아들을 오빠를  친구를 주님의 품에 보내고 슬퍼하고 계시는 부모님들께 그리고 친지 여러분들께도 마음으로부터의 위로를 전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글을 내twitter로 보냅니다 이글을 facebook으로 보냅니다 이글을 미투데이로 보냅니다 이글을 다음요즘으로 보냅니다  

 
   
 


굿뉴스 Diocese of Austin 마리아사랑넷
이용약관 |  개인보호정책 |  광고안내 |  온라인문의 |   로그인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Korean Catholic Church at Austin, Texas | 6523 Emerald Forest Drive, Austin, TX 78745 | Phone:(512) 326-3225
Copyright ⓒ www.kcc-austin.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