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해방 선포에 담긴
참된 의미
루카 1, 1-4; 4, 14-21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부분은 루가복음사가가 복음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를 설명하는 서문부분(1,1-4)와, 둘째 부분은 예수님께서 공생활 초기에 광야에서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으신 후 나자렛에 돌아오신 후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4,14-21). 특히 둘째부분에서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나자렛의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에
기록된 부분(이사 61, 1-2)을 읽으십니다.
당시의 안식일에 회당에서는
율법과 예언서가 봉독되고 설교가 뒤따랐습니다. 유다인 성인 남자는 누구나 ‘설교’를 할 수 있었고 회당의 책임자들은 보통 이 임무를 성경에 능통한
이들에게 맡겼다고 합니다(사도 13,15절 참조).
예수님께서 그때 읽으신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이사 61,1-2) 하는 이 대목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활동하던
당시에 이 예언의 말씀은 그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귀양살이에서 돌아오게 되리라는 희망을 주었던 말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듣고서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서봉독을 마치시고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신 뒤 사람들의 시선이 당신께 쏠리고 있는 그 순간에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가 4,20-21).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담겨져 있는
말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사야 예언자의 그 말들 이 바로 ‘마리아의 아들’ 또는
나중에 사람들이 경멸하는 뜻으로 말하는 ‘요셉의 아들’인 바로 예수 자신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는 점이며, 둘째는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메시아의 활동이 이미 바로 그 순간 즉 ‘오늘’이루어진다고
하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바로 이러한 일을 하시는 메시아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이 당시에 말씀을 듣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박해하게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소식,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 선포하는 일,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하고, ,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인가에 대해서 묵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모든 구체적인 일들이 그 상태에서의 회복이 아닌 예수그리스도께로 향하는
회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들의 회복이 그 상태에서 머물러 버린다면 예수님은 환자에게는 의사이며, 갇힌 사람들에게는 풀어주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머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침된 구원은 바로 주님 안에서 일어나며 주님께로 향하는 회복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