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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7-24 15:59
   사랑의 거룩한 힘 (요한 6,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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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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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 주일

2015년7월 26일 일요일

사랑의 거룩한 힘 (요한 6, 1-15)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요한 6, 5-6).


오늘 아침에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거룩한 힘을 믿느냐?” 하는 질문을 하십니다. 참 사랑은 기적을 만든다는 사실을 믿는가 하는 질문을 하십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저의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언제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는 저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서 벗어나 이웃을 보라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쉽지만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쉽지만 그리스도인 답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코린토 전서  13장은 사랑의 찬가라고 불리는 장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3장 1절부터 3절은 이 장의 서론 부분입니다. 

이 서론 부분의 특이한 점은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떠한 능력을 갖고서 어떠한 좋은일을 하던 중요한 것은 나에게 사랑이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말은 참으로 많이 합니다. 하지만 참 사랑이 그리운 시기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나 봅니다.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을 봅니다. 말로서 먹고 사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무슨 사건이 생길때마다 수없이 언론이나 공공장소에 등장해서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수없이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을 봅니다. 옛날의 저의 모습이나 현재의 저의 모습을 봅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보다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정의의 언어’와 ‘고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보면서 질문합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열을 올리면서 원칙과 정의를 말하는데 저사람들에게 사랑은 있는 것인가?’ 왜 저 사람들은 ‘고백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고발의 언어만 사용할까하는 생각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하고 말할 때 그 사람들 속에 ‘저’ 또한 슬프게도 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이나 표징들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먹을 것임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필립보에게 이 사람들을 먹일 빵을 어디서 구할 수가 있을까 하고 물으십니다. 그는 원칙을 말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먹일려고 하면 엄청난 양의 빵이 필요한데 지금은 구할 수가 없습니다. ‘가능성’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능성’을 질문하시지만 사람들은 ‘불가능함’을 말합니다. 사물이나 사건을 두고서 접근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이 때 안드레아가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지만 그것들로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장정만도 오천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즉 인간의 최소한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보리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는 장정만도 오천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를 드리십니다. 우리는 불평을 할 때 그분은 감사를 드리십니다. 이것이 차이입니다 

인간이 ‘불가능’을 말할 때 예수님께서는 ‘가능’을 말씀하시고 인간이 ‘불평’을 말할 때 예수님께서는 ‘감사’를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불가능에서도 가능을 찾지만 사랑이 없으면 가능한 것 안에서도 불가능하는 것을 찾습니다. 감사는 부족한 것에서도 충만함을 찾지만 불평과 불만은 충만함 속에서도 부족함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은 기적의 출발점입니다. 기적은 ‘가능성을 믿는 것에서, 최소한의 것에도 감사를 하는 것’에서  이루어짐을 깨닫게 됩니다. 

배를 굶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왜 이들이 배고파야 하는가의 원인과 이유를 따지기 이전에 먼저 이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것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이들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을 헤아리는 마음 즉 사랑이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에게는 참 사랑이 있는가?’하는 질문을 해 봅니다. 그리고 참 사랑을 실천하는 하루를 살고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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