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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14 08:04
   믿음으로 희망이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삶(마르 1, 40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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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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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6주간 강론

믿음으로 희망이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삶(마르 1, 40 - 45)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고 말합니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인 줄을 알고 살았는데 그 결혼이 바로 순교의 삶의 시작인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원래 삶이란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현실을 대면하게 되면서 상처를 받고 주기도 하나 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선하고 편한 것보다는 악하고 불편한 것을 추구하나 봅니다. 

인간은 ‘너 죽고 나 죽는’ 복수를 추구한다면 하느님 안에서의 복수는 ‘너도 살도 나도 사는 삶’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악을 악으로가 아닌 선으로 갚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통쾌한 복수는 용서다.’라고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자신이 남에게 피해를 주었으면서 동일한 형태로 책임을 지기를 강조하지만 신약에서는 나에게 오른쪽 빰을 때리는 사람에게 왼쪽 빰을 내주고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 주라고 말합니다.

구약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져햐 하는 가에 대해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말하고 있다면, 복음서에서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슴을 보게 됩니다. 사랑을 통한 상대방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이러한 논리를 반대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작금의 세상의 모든 문제와 갈등은  바로 이렇게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레위기 12장의 말씀으로 나병에 걸린 사람은 격리되어야 한다는 정결례법의 원칙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 사람들도 거룩해져야 한다는 그 정신이 정결례 법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 의도는 좋은데 그 적용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유다인들은 출산같은 자연적 현상과 질병과 같은 부정한 것인데 이러한 부정한 것의 이면에는 죄성이 작용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가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정한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온갖 종류의 피부병을 나병이라 했습니다. 나병은 전염성이 강해서 나병에 걸린 환자들은 예루살렘과 기타 성곽도시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곳에 격리되어 살았습니다(레위 13,45-46). 그리고 나병은 죽음처럼 회복할 수 없는 병이기 때문에 하느님만이 이 병을 고치실 수 있다고 유다인들은 생각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어떠한 제도이든 음식이든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을 사랑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야 함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규정을 보지 그 규정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규정이 절대화 되면 그 규정이 우리의 우상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은 이러한 규정에서 자유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은 겉으로 드러난 규정이나 제도의 노예가 아닌 그 규정의 원래의 의미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유다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하느님의 교회에도 방해를 놓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 속에 바오로 사도의 인생관이 담겨져 있습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자신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는 삶’입니다.  그는 이러한 삶을 성실하게 살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을 보면, 어떤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고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서 도움을 청합니다. 당시의  나병환자의 심리적 고통과 갈등, 그 사회적 냉대를 우리는 이루 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나병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실망과 좌절의 대명사였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이 나병환자가 힘들게 살아가게 만든 사람들의 중의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최후의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찾아온 이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대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사랑으로 응답하십니다.

믿음으로 희망이 사랑으로 실현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이 두 대화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이 두 말씀이 구체화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세속의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동정심으로 자신의 지갑을 열고서 지나가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하고 교황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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