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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13 21:08
   성 십자가 현양 축일(요한 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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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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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십자가 현양 축일

2014년 9월 14일 일요일

6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 6-8)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 16-17)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십자가를 보면  횡으로 종으로 만나는 교차점이 있습니다. 그 교차점을 통해서 좌우 상하로 연결이 됩니다. 이 교차점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이웃을 만나게 하고 동시에 우리와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입니다. 현양(顯揚)이란 말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봅니다. 명사로서의 의미는 “이름, 지위 따위를 세상에 높이 드러냄” 입니다. 따라서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의 의미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도 인간과 하느님과의 만남도 그 중심에 에수님이 있슴을 세상에 높이 드러내고 이를 보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모범을 통해서 삶이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마음에 담고서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바오로 사도의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코린 전 1, 23)말씀이 떠오릅니다.

유다인에게는 걸림돌이라고 하는 말은 그리스말로 보면 ‘스칸달론(σκανδαλον)’ 이라고 합니다. 이 ‘스칼달론’ 이라는 말에서  스캔들(Scandal)이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에게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가  ‘걸림돌’ 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이 기대하던 메시아는 수난 당하는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무능력하고 비참하게 십자가 상에서 죽어가는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세나 다윗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혜란 이성의 합리적인 사고를 통한 철학적 이해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철학적 전통을 가졌다는 자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유명한 지식인이 있었는데, 나자렛이라는 촌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과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모순 중의 모순이며 미련한 것 중의 미련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것을 조롱했습니다.따라서 이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는 걸림돌이고 어리석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참 메시아를 발견하고 이 십자가를 통해서 참 지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지혜는 참과 거짓의 경계에 서서 상황에 따라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 십자가는 우리에게 ‘예’ 아니면 ‘아니오’라고 분명한 대답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 하느님이기를 포기하는 이유를 묵상해 봅니다. 세상적인 눈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주시고 그를 믿는 이들을 멸망하지 않게 하신 이유는 바로 ‘세상에 대한 극진한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은 모든 문제의 해결사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이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와 닿을 때 ‘십자가’의 신비가 풀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형틀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한 삶으로 가는 가교인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의 형틀을 영원한 삶의 가교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우리의 이웃이 십자가를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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