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 7장은 서두에 예수님께서 병들어 죽게된 백인대장의 노예를 살리시는 기적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에 감탄을 하시면서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안수도 방문도 필요없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직접 죽은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믿음을 보신 것이 아니라
외아들을 잃고서 힘들어 하는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그녀의 외아들을 살려주십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으로 오늘의 본문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이신가를 우리에게 알려주신다고 하면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많이 용서 받은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많은 것을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 외에 두명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시몬이라고 불리는 바리사이고 또 한 사람은
죄인인 여인입니다. 먼저 이 두사람을
소개할 때 루카복음 사가는 이 두사람 앞에 수식어를 붙입니다. 이 수식어가 갖고 있는 의미를 잘 이해하면
이 본문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사람의 식사 초대를 받아서 식탁에 앉아 있을 때 일입니다. 그
고을에서 죄인인 여자 하나가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찾아와서 일어난 일입니다. 죄인이라는 수식어가 이 여인에게 붙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시몬이라는 사람을 바리사이라고 소개합니다. ‘바리사이’라는 단어의 뜻은 ‘분리된 자들’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구별된 삶을 산다는 의미로 바리사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다시
말해, 시몬은 바리사이로서 하느님의 율법에 근거하여 구별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의 발을 자신의 눈물로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는 그것을 보고서 예수님께서 만약에 예언자라면 이 여인이 죄인임을 알았을 것이다. 하고 속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아시고 시몬에게 비유로서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 그리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지고 있는데 이 빚을 탕감해 준다면, 누가 더 감사하게 생각을 하 겠느냐 하고 질문을 합니다. 시몬이 대답하기를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집에 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손님을 초대하면 발씻을 물을 주었지만 시몬은 물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너는 나에게 입도 맞추지 않았다. 그리고 머리에 기름도 부어주지 않았다. 단지 식사에 초대하는 것으로 만족하였지만 저 여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로 자신이 그만큼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자신이 큰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고 그러한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정성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스스로 거룩하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용서를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 여인은 스스로 큰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교만과 겸손을 대비시키십니다. 겸손은 은혜를 받고 교만은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겸손함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은 구원을 가져오지만 교만함에서 우러나오는 판단은 구원을 받지 못함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두 사람 중 누구에
속하는 가를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