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간 강론
2013/5/4
예수님께서 유다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에게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함께 살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즉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와
함께 그러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사신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첫번째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와서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제자들을 당신께서 머무시는 곳으로 초대해서 하루를 머물게 하십니다. 당신과 함께
머뭄이 제자됨의 조건이 됩니다. 이제 아들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성부와 성자께서 함께
오셔서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는 ‘와서 보라’고 초대를 하셨지만 이제 말씀을 실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성부와 성자께서 함께 찾아오셔서 머무르신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초대에 응답하면서 살아가는 그 사람들에게는
당신께서 찾아오셔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부르심에 우리의 자유의사로의 ‘응답’이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당신과 성부의 깊은 일치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복음사가가 사용하는 성령의 그리스어 ‘파라클레이토스’라는 말을 ‘보호자’라고 번역하였지만 원래의 의미는 ‘옆에 있도록 불림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항상 내 옆에 있으면서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의 의미를 가르쳐 주시고 또 그 말씀을 기억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성령은 바로 하느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떠나시면서
‘평화’를 남기고 가신다고 합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남기시고 가시는 평화는 이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평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평화입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누리는 평화는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평화이며, 그 무엇으로도 깰 수 없는 확고한 평화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바탕으로 한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가지는 네 가지 특성을 아래와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순간적이지 않고 영원한 평화입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건이 좋을 때 생기고 나쁠 때 사라지는 평화가 아닙니다.
둘째, 영적 평화입니다.
셋째, 내적 평화입니다.
넷째, 완전한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 평화’에 반해, 세상이 주는 평화도 네 가지 특징을 갖습니다. 첫째는 짧고 순간적인 것입니다. 둘째는 물질적이고 육적인 것입니다. 셋째는 외면적인 것입니다. 넷째는 불완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 품안에 있는 아이는 어머니 품 안에서 아무런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평화롭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느님 안에서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과거에
얽매여 살지도 않습니다. 오지 않는 시간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누려도 항상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두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근본적인 차이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하겠습니다. 당신의 품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러한 큰 선물을 허락하시는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