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 메인홈 로그인 | 메일재인증 | 업데이트 알림 | 회원가입 | 관리자 문의 |  사이트맵 |  18 (회원 0)  
ApacheZone
등록된 배너가 없습니다.
등록된 배너가 없습니다.
Home >  강론및기고 >  주일강론
 
작성일 : 16-04-15 08:04
   부활 제 4주일(성소주일) (요한 10, 27-30)
트랙백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2,263  
이글을 내twitter로 보냅니다 이글을 facebook으로 보냅니다 이글을 미투데이로 보냅니다 이글을 다음요즘으로 보냅니다  


부활 제 4주일(성소주일)

2016년 4월 17일 일요일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 27-30)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요한 10, 27-28)

교회에서는 해마다 부활 제4주일을 ‘성소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되던 1964년 바오로 6세 교황이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정해졌습니다. 

오늘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나는 착한 목자다.’(11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착한 목자란 11절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양’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 놓습니다.  그리고 ‘양’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는 말씀인 것처럼 양과 목자의 관계도 하나임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주석성경의 요한복음 10장 15절의 설명을 보면, 성경의 전통에서 사람들끼리 서로 안다는 것에는 사랑도 포함된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그분을 믿는 이들을 한데 묶는 ‘앎’은, 성자와 성부를 한데 묶는 사랑에서 비롯되고 또 그 사랑으로 충만해진다고 합니다.  십자가 위의 죽음이 이 사랑을 드러내는 지고의 표현이라고 합니다(13, 1; 15, 13). 

따라서 ‘나는 그들을 알고’라는 말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양들인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깊은 일치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사랑은 상호적인 것이기에 우리 역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과 일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바로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죄를 용서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사도 2, 38) 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억울하게 죽게 되었을 때 ‘악법도 법이다.’라고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악법에 의해서 그가 처형되기 위해서 처형장으로 끌려나갈 때에 제자들이 따라가면서. ‘선생님께서 무슨 죄가있어서 이렇게 죽으십니까? 너무나 억울하고 분합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빙긋이 웃으면서 “너희들은 그러면 내가 꼭 죄가 있어서 죽어야겠느냐?”하고 말합니다. 

참으로 깊이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죄가 있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어가는 삶이 우리의 삶이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억울하게 죽는다는 것은 내가 자발적으로 그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선을 행하다가 고통을 받는 것(1베드 2, 20)을 말합니다.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고난을 선택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고 영원히 멸망하지 않게하시고 동시에 아무도 당신의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십니다.(요한 10, 28).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 이러한 모범을 따르라고 우리에게 모법을 보여주십니다. 그 모범은  바로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통해서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의 입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었다.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1베드 2, 22-24)

이 말씀을 들으면서 깨닫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시는 모습을 보면, 아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어떠한 변명도 없이 고난을 당하십니다. 오로지 당신을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자신을 맡기십니다. 

오늘의 나는 참으로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나의 미래를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지금의 나를 판단하시지 않으십니다. 나약한 저희들에게는 불가능한 삶인 것처럼 보이지만 성령께서 이러한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동시에 말씀이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해 주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양으로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확신을 갖고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글을 내twitter로 보냅니다 이글을 facebook으로 보냅니다 이글을 미투데이로 보냅니다 이글을 다음요즘으로 보냅니다  

 
   
 


굿뉴스 Diocese of Austin 마리아사랑넷
이용약관 |  개인보호정책 |  광고안내 |  온라인문의 |   로그인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Korean Catholic Church at Austin, Texas | 6523 Emerald Forest Drive, Austin, TX 78745 | Phone:(512) 326-3225
Copyright ⓒ www.kcc-austin.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