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2015년 9월 20일 일요일
자신을 버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삶(루카 9, 23-26)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 26-27)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예수님의 질문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먼저 살아간 신앙의 선조들이 이 질문에 목숨을 걸고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 16)하고 대답했던 베드로의 그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이러한 고백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가톨릭 교회에 있어서 참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가톨릭 교회가 이렇게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토대는 순교자들께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흘리셨던 피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기에 지금은 고전적인 의미의 순교는 흔치 않습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의 순교는 피를 흘리는 순교가 아닌 ‘하느님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는 것’,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루카 복음 14장 26-27절에서도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하시면서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은 ‘미워한다’는 말을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미워한다’는 말을 ‘덜 사랑한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따라서 자기의 부모나 아내나 자녀나 형제자매 그리고 자신의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그들에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세상적인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고 하느님과의 새로운 인연으로 살아감을 말합니다. 결혼은 하는 사람을 두고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은 자기 부모를 떠나 자기 배우자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된다.”(창세 2, 24)고 말씀하십니다. ‘떠남’과 ‘하나됨’을 강조합니다. 부모를 떠남이 없이 배우자와 하나될 수 없을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을 결혼을 시키면서 자식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또한 자식들도 부모를 떠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도 떠나지 못함으로 인해서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져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죽으실 것을 뻔히 아시면서 십자가를 향해서 가십니다. 우리의 순교성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선택합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는 피하다가 지는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이는 전적인 헌신을 말합니다. 모든 것을 내어 놓음을 말합니다. 본 회퍼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헐값으로 은혜를 구한다.’고 합니다 값비싼 것을 원하면 값싼 것을 버려야 합니다. 값싼 것을 위해서 , 지혜도 명예도, 권력도, 하찮은 재물도 얻을려면 수고를 해야 한다면 하느님을 얻고자 한다면 어떠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무엇을 버려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전에 알던 모든 생각과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과거를 끊지 못하고 미래로 나아갈려고 하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우리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 세상 어느 것도 환난도 역경도 세상적인 박해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위험도 칼도 우리를 당신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로마 8장 35절).
우리의 순교자들이 보여주었던 그 순교의 삶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는 가능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하신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 19-20)는 말씀처럼 내가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그래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순교의 삶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