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강론
2015년 8월 30일 일요일
깨끗하고 흠없는 신심 (마르 7,1-8.14-15.21-23)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야고 1, 27)일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마르 6, 6-8)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삶을 구체적으로 야고버 사도는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일(야고 1, 27)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머리로 만의 신앙이 아닌 실천으로의 신앙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겉으로 드러난 형식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율법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 역시 율법의 참 의미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형식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 7장 1에서 23절에는 정결법(7, 1-8)과 코르반 법(9-13) 그리고 금기식품(14-23)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여기서 두 번째의 코르반 법을 빼고 나머지 부분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형식적인 우리의 믿음 생활에 대해서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은 비록 이천년 전의 경고이지만 이천년 후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경고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께서 ‘이 사람들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비판하십니다. 그러면 왜 이들이 이런 비난을 받았습니까?
오늘 복음을 얼핏 읽으면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에 대해서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하는 질문에 대해서 단순히 당신의 제자들을 변호하기 위해서 오히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비판하시는 것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모세의 율법을 따지고 실천하는 데는 아주 철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정결례 법을 열심히 지키고 열심히 기도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단식도하고 정확히 십일조를 바치고 자선도 곧잘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갖고 있었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웃을 단죄하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정결이었고 기도이었으며 단식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예수님께서는 못마땅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오늘 이들을 비판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말만하고 실천이 없는 자들이기에 위선자들이라고 호되게 꾸짖으시기도 하십니다.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야단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깊이 느낍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실천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 실천이 어떤 정신에서 이루어지는 가가 중요함을 깨답습니다.
또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 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실천이 말씀의 뜻과 정신에 부합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임을 명심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삶을 시작하는 한 주간이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