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일
2015년 6월 21일 일요일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코 4, 40)
오늘 제 1 독서를 보면, 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그와 같이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욥 1, 8)고 말씀하실 정도로 경건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그가 어느날 갑자기 이유없이 불행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남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렇게 착하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하느님께서 대답을 하십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우리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질문형식의 답니다. “바다를 누가 만들었느냐?" 하고 고통 때문에 울부짖고 있는 욥에게 하느님께서는 질문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은 바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세상은 누가 만들었느냐?"
하느님의 대답이 생뚱맞게 들리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참으로 그 질문 속에 답이 있슴을 깨닫게 됩니다. 도대체 누가 세상을 만들었으며 그리고 누가 그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느냐 하는 질문 속에 담김 참 의미는 바로 하느님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욥은 그 질문 속에서 답을 찾고서 자신의 불신앙을 뉘우치고 다시금 믿음을 회복합니다. 그래서 고난 뒤에 더 큰 축복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 40) 하고 질문하십니다. 나름, 어릴 때부터 믿음의 생활을 해왔기에 믿음에 대해서 만은 할 말도 많고 자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믿음의 부족을 체감하며 살아갑니다. 이 믿음의 깊고 낮음의 기준이 ‘두려움’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나의 아버지이신데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론과 실천의 사이에는 엄청난 갭이 있슴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말씀하시고 이제 당신도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 배를 타십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때 큰 풍랑이 일어납니다. 파도가 배를 뒤덮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잠을 주무십니다. 제자들은 풍랑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과 주무시는 예수님의 대조적인 모습을 바라봅니다. 어떻게 저분은 이러한 상황속에서 태평스럽게 잠을 주무실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제자들이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웁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합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위기의 순간을 구해줄 능력이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서 추측할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믿음이 약한 자들이 갖는 특징을 단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십니다. 믿음의 부족에서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이렇게 호들갑을 떨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시면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십니다. 인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자연의 문제까지 해결하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세상 만물이 예수님의 지배하에 있슴을 보게됩니다.
마귀의 시기와 질투는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특히 선하고 경건하게 살아갈려고 노력는 사람들을 유혹하며 그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태풍이 몰아치는 그 와중에 주무시는 예수님처럼 하느님께서는 침묵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 속에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슴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그러한 고통을 이길 수 있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인시켜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