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4주간 강론
착한 목자로서의 삶(요한 10, 11-18)
2015년 4월 26일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요한 10, 11-18)
선거 때만 되면 ‘착한 목자’에 대한 오늘 복음 말씀이 생각납니다. 당선만 되면 국민을 섬기겠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당선만 되면 착한 목자의 모습에서 삯꾼의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천재적인 변신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동시에 이들이 삯꾼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사람도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보지 못하고 눈 앞의 이익에 집착한 우리의 어리석음이 이러한 삵꾼들이 등장하는데 일조했슴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 우리는 공부를 하고 돈을 벌려고 하는 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혹은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행복의 기준은 나눔과 배려의 마음이 아닌 과시와 내려보기와 같은 소유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많이 가지고 있기에 위로 보고 못 가졌기에 아래로 보아서는 안되는 참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고 도구적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자신의 출세를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마음이 저변에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은 후, 인간은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인간 중심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느님이 중심이 되는 삶에서의 ‘행복’은 나눔과 배려에 있었다면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삶에서의 ‘행복’은 소유와 독점에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의 삶을 살아갑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알려진 아브라함도 하느님을 믿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식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슴에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나도 자식이 없자 그의 아내 사라이는 아브라함에게 이제 더 이상 하느님의 약속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도 그녀의 생각에 동의를 합니다. 그래서 하가르를 통해서 아이를 갖게 됩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이스마엘’입니다. 이러한 불신앙이 그의 가정을 파탄을 이끌어 갑니다.
오늘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는 양이기도 하고 목자이기도 함을 강조하십니다. 상황에 따라서 그 위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있게 되던 착한 목자와 양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착한 목자는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양들을 도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자는 자신의 양들을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가는 존재입니다. 세상적인 위험이나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마저도 내어 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의 리더쉽인 것입니다. 동시에 양들은 자신들을 보호하는 목자들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자신의 목자 이외에는 누구도 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섬김과 감사의 관계가, 축복과 감사의 관계가 바로 착한 목자와 양의 관계인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어 놓으셨던 예수님은 착한 목자의 리더십의 전형적인 모형이십니다. 이런 리더십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리더십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의 리더쉽에 부합하는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