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요한 20장 19-29)
2015년 4월 12일
요한 20장 19-29
오늘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첫 부분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문을 잠가놓고 있던 제자들에게 오셔서 세가지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첫번째의 메시지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입니다. 그리고 두번째의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곧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것입니다. 세번째의 메시지는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부분은 토마스의 믿음을 다루고 있는 부분입니다.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발현하신 현장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주님을 뵈었다.’고 말할 때 그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예수님의 손에 있는 못 자국과 옆구리에 자신의 손을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사건이 있고난 여드레 후에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직접 당신의 모습을 확신시켜 주신 후에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토마스는 비로소 자신의 “주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고 자신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는 그 근원이 예수님으로부터 유래하는 ‘평화’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만이 가질 수 있는 ‘평화’인 것입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른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가 긴장 속의 평화라면 주님이 허락하시는 평화는 어떠한 환경의 영향도 받지 않는 평화인 것입니다. 세상적인 어떠한 두려움의 요소도 침범할 수 없는 평화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당신 안에서 ‘평화’를 누리는 사람만이 당신으로부터 파견을 받을 수 있슴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의 평화를 누리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주님을 증거하고 그분의 말씀을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주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고자 하여도 한계적인 인간은 쓰러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는 성령을 당신으로부터 파견을 받는 사람들에게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보호자 역할을 하시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성령의 충만함을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의 서두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문을 잠가놓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러한 두려움에 쌓여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한 번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두려움의 이면에는 이들이 굳건한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믿음의 부족함의 원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의 불신앙을 갖고서 그 불신앙이 그들만의 불신앙이 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는 불신앙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성과 논리와 보이는 것에 기초한 믿음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이러한 것들을 뛰어넘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참 행복은 인간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 머물려고 하는 그 믿음을 넘어서는 믿음에 기초함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 번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말씀하십니다. 한 번은 과거로부터 오는 모든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의 ‘평화’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의 ‘평화’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주시는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미래에 다가올 불확실성과 두려움으로부터의 ‘평화’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의 ‘평화’는 토마스를 통해서 주시는 ‘평화’인데 이 ‘평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유혹과 의심으로 다가오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평화’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주시는 이 ‘평화’는 바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평화’인 것입니다. 과거의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 라고 말씀하시는 이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며 이 말씀은 바로 이제 나는 ‘너희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임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