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8주간 강론
2014년 10월 12일 일요일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삶
금요일부터 시작하여 토요일에 마친 말씀의 여정은 피곤하기도 하였지만 그 피곤을 넘어서는 기쁨과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만남이기 때문에 피곤이 피곤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만남의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만남은 항상 기쁨이 충만한 감사의 만남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이웃을 위해서 기쁘게 자신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자세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니오는 혼인잔치의 비유는 바로 앞 부분의 두 개의 비유 즉 두 아들의 비유(마태 21,28-32)와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5)에서 이미 다루어진 신학적 주제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예수님께서 질문을 하십니다. 이제 나를 만날 준비는 끝내었느냐? 갑자기 놀라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니 예수님! 갑자기 당신을 만날 준비를 끝냈느냐 하고 물으시면 어떡합니까? 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깨어있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네 당신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이렇게 빨리 확인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십시오.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질문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대답은 시간을 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렸지만 막상 구체적인 준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의 첫째 부분은 나를 두고서 하시는 말씀과 같습니다. 지금은 많이 고쳤지만 에전의 본인을 되돌아 보면, 하느님과 관계되는 일에는 너무나 소극적이 귀찮아했던 저의 모습입니다. 그러했기에 하느님의 초대장을 받아 들고서는 그 초대를 거부할 수 있는 적당한 핑계꺼리를 찾습니다. 너무 바빠서, 또는 성당에 나오면 누가 보기 싫어서, 아니면 형식적으로 하는 미사 참례에 싫증을 느껴서 등등 여러 구실을 붙여 하느님의 초대를 거절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또 다른 초대장을 보내시는 대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는 내용이 담긴 경고장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기보다 뽑히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두 번째 부분은, 이방인들,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에 대한 초대입니다. 먼저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고 바쁘다는 핑계로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자, 임금은 당신의 초대를 포기하지 않고 길거리에 나가 거리의 사람들 맹인, 절름발이, 나병환자, 술주정뱅이, 귀머거리를 불러다가 잔치자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지만 실지로 선택받는 사람의 수는 소수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혼인 잔치에 참석한 이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임금은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불러 놓고, 왜 예복을 입지 않았는가? 라고 책망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바라고, 모든 사람을 잔치에 초대하지만, 초대받은 사람이 최소한의 예의, 즉 예복을 갖추지 않고 참석한다면 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초대를 하셨을 때 나는 얼마나 큰 기쁨을 갖고서 주님의 초대에 응했던가를 생각해 보면, 유아세례를 받은 제가 기쁨을 기질 수가 있었겠습니까? 부모님의 뜻에 따라서 세례를 받았겠지요. 그런데 당시에 느끼지 못했던 그 기쁨을 지금은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기쁨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느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그 나눔의 기쁨은 하느님의 현존이 나를 통해서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제가 살아가는 모습은 하느님의 현존이, 하느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삶인가를 살펴보면, 참으로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이사 25, 9)하고 말합니다. 나의 삶을 통해서 나의 이웃이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이 참으로 나만의 하느님이 아닌 우리의 하느님이심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분께서 베풀어주시는 구원에로의 초대에 기뻐하고 있는지?
두려운 것은 바로 초대에 응하기는 하였지만 나는 참으로 ‘혼인예복’을 잘 차려입고 왔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 입어야 하는 혼인예복이란 바로 예수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인간’이 중심이 삶이 아닌 ‘하느님’께서 중심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과 회개’의 삶을 말합니다. 하느님이 목적이 되는 삶입니다. 성령께서 주인이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있었으면 합니다. 내가 대면하게 되는 어떠한 모습의 상황에도 나는 이겨나갈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하느님께서 주신다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