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5 주간
2017년 4월 2일 일요일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
19 -27)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에제 37, 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요한 11, 25-26)
요한 복음에는 카나의 혼인잔치(2, 1-11),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시는 기적(4, 46-54), 벳자타 못가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시는 기적(5, 1-9), 오천명을 먹이시는 기적(6,
1- 15),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6, 16-21) ,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치시는
기적(9, 1-11) 그리고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는 기적(요 11, 29-44) 등 일곱 개의
기적이 나옵니다. 오늘 복음은 이 7개의 기적 가운데 제일
마지막 기적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안다는 것’과 ‘믿는 것’에 대해서
무엇이 먼저인 가에 대해서 혼동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아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믿음’이 모든 신비를 여는
열쇠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에수님께서 이러한 ‘믿는 것’의 중요함에 대해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부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것은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해결하지 못하는 죽음의 문제를 2000년 전의 사람이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죽은 사람을 다시 되살리는 일이란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로지 믿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마리아와 마르타는 모두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있어서 두 자매는 너무나 다릅니다.
마르타의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루까복음 10장 39-40에서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는 것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뜻대로 해달라고 명령까지 합니다. 소유하고자 하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말씀을 경청하고 가장 아끼는 것으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당시에
일반 사람의 일년 임금에 해당하는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찾을 때도 뛰어가서 먼저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마리아입니다. 존재로서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마르타는 일하는 것과 지식(아는 것)으로
예수님을 사랑했으면 마리아는 믿음과 헌신으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아는 것’에
머무르는 신앙의 모습을 보시면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시며 여태까지 마르타의 신앙을
이제는 아는 것에서 믿는 것으로 나아가게 해 주십니다.
마르타의 믿음은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합리적인 믿음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믿음일 수도 있슴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이성 안에 갇혀 있는 믿음이기에 하느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이성 밖에 존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믿음으로 다가가면 이해가 되지 않던 문제들이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죽음을 이기시고 죽음을 지배하시는 분이심을 라자로를 살리시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우리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 이것을 믿느냐? 하고 질문하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믿습니다’하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이해에서 믿음으로가 아니라 믿음에서 이해로 나아가는 삶을 살고자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