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간 미사
2017년 2월 20일 일요일
아버지의 완전함을 닮아 가는 삶(마태 5, 38- 48)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 48)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용서하는 것과 원수를 사랑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하고 저에게 질문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악을 피하는 소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악을 범할 기회 자체를 없애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야 함을 예수님께서는 알려주십니다.
용서와 사랑은 떨어진 말이 아니라 함께하는 단어입니다. 단지 사랑이라는 큰 범주 안에 용서가 포함됩니다. 사랑에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용서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랑해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용서해야 하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없애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몇번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일곱번의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무한히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깨닫습니다. 용서의 질도 용서의 양도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용서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잘못은 참으로 기쁘게 용서하고 받아들입니다. 관대하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과 용서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이나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동태복수법을 폐기하시고 새로운 율법을 제시하십니다. 어떤 여기서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라고 하는 말씀은 악한 방법으로 어떠한 사람이 설사 맞선다 하더라도 나도 악한 방법을 복수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5장 20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이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마태 5, 20)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바로 의로움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의로움이란 율법을 잘지켜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잘 실천하는 데 있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을 능가하는 의로움은 바로 겉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삶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오늘복음은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누가 오른 뺨을 때리면 다른 쪽 뺨까지 내어 주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오른 뺨을 치는 것’은 오른 손잡이의 경우에는 손등으로 또는 주먹으로 상대방의 오른 뺨을 치는 것으르 말하는데 이것은 심각한 모욕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의 참 뜻은 우리가 그러한 모욕을 당하더라도 그 모욕에 동일한 방법으로 맞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선으로 대하라고 합니다.
예수회의 창립자이신 이냐시오 성인께서는 ‘예수회원은 죄인이다.’ 라고 예수회의 회헌에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 임을 인정하면 우리에게 용서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죄인 임을 인정하면 타인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용서를 받고 사랑받기를 원한다면 나의 이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할 때 내가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용서함의 실천도, 사랑의 실천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악을 선으로 갚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하지만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면 쉬워집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이 쉬운일 이 아닙니다.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도우심입니다. 내 혼자만의 힘으로 할려고 하면 지치지만 내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하시면 못할 일이 없으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를 하면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은 응답하십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예수님께서 자리하시게 됩니다.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뀝니다.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었던 삶이 이제는 평화와 감사와 찬미의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놓고 주님께 의탁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