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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19 09:26
   연중 제 21주간 - 좁은 문을 선택하는 사람 (루카 1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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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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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일 미사 강론

2016년 8월 21일 일요일

좁은 문을 선택하는 사람 (루카 13, 21-30)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 22)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8장 28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서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만 딱 떼어 자주 인용하고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말은 그 전에 있는 조건을 잘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 에게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이란 바로 우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하느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그래서 이 두 말은 다르게 쓰여진 동어반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던 이 두 조건의 사람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을 두고 하는 말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가끔 질문을 해 봅니다.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가끔은 사랑한다고 답을 머뭇거리지 않고 합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그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이르면 답하기가 궁해집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 오면서도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무엇을 해 왔느냐에 대한 질문에 머뭇거리는 것입니다. 

지난 날의 신앙생활을 되돌아 보면, 나의 신앙은 하느님 중심이기 보다는 내가 중심이 되는 신앙이았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서 불린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분의 부르심의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아프지만 고백해야 합니다. 요구하는 사랑은 해 왔지만 베푸는 사랑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도 ‘기복적인 기도’는 많이 해왔지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기도에는 참으로 인색했습니다. 살면서도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삶이 아닌 내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왔슴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이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 봅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이제는 참으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겠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하느님의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느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나의 말과 행동이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것에서 하는 것인지를 미리 따져보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질문을 합니다.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질문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기 전에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에  여러지역을 지나시면서 가르치시는 것을 보고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가르침을 들으면서 스스로 ‘저분의 가르침대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구나.’ 하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긍정의 질문보다는 부정의 질문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의 질문하는 모습이  바로 내가 하는 질문을 대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예수님의 대답도 역시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어렴풋이 알 것 같은데 딱 집어서 말하기가 힘이듭니다. 이말은 확실하게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의 힌트가 오늘 복음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30절을 보면,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이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꼴찌인 사람, 첫째인 사람 , 이들의 순서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첫째이기 위해서 살아가거나 첫째인 사람이 꼴찌가  되거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세상적으로 꼴찌로 살아가는 사람이 첫째가 되거나 첫째가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첫째가 되고 꼴찌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인 것입니다.

지금 첫째인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꼴찌로 살아가라는 것인데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자신을 포기하고 내어놓아야 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말합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러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좁은 문’의 의미를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적으로 첫째가 되는 욕망을 버리는 것, 하느님 안에서 첫째가 되는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바로 그것이 ‘좁은 문’을 의미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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