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5주일
2016년 7월 10일 주일
나를 살리는 계명 (루카 10, 25-37)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루카 10, 26 - 28)
예수님께서는 오늘 저희에게 참으로 사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바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하는 것.’ 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계명은 수동적인 수행의 것이 아닌 능동적인 실천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쁨과 감사로 실천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실천입니다.
오늘 복음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 그리고 사랑의 실천으로서의 착한 사마리인의 비유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합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으시고 그 율법교사에게 되물으시기를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26절) 하고 질문하십니다. 그가 율법의 전문가로서 율법을 다 알고 있는 줄로 여기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 즉 그가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는 않고 있음을 깨우쳐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율법교사는 대답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27절)
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행동하지 않는 믿음의 허구성을 깨우쳐 주시면서 실천하는 신앙이 바로 영원한 생명을 담보한다는 것을 강조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한 율법교사의 반응은29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는 것입니다(29절).
그 율법교사는 이제 자기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고 따라서 영원한 삶을 소유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음이 드러나자 그 부끄러움을 피해보려고 우물거리며 말하기를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질문한 것입니다. 마치 사랑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할지를 몰라서 그랬다는 듯이 변명을 한 것입니다. 아니면 "내가 그만큼 했으면 됐지. 더 사랑해야 할 이웃이 또 어디 있다는 것입니까?" 하는 항변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누구의 이웃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관해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30절 이하의 소위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말씀인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우리는 신앙이란 단지 율법의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이 함께해야함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하느님만 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내 이웃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누가 내 이웃인가?" 묻기보다 "나는 누구의 이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본문 29절에서 율법교사는 예수님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36-37절에서 다시 봅니다: “36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 율법교사에게 누가 그의 이웃인지를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고 그가 누구에게 이웃이 되어주어야 할 것인지를 되묻고 가르쳐주셨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일생 "누가 내 이웃인가?" 하는 이기적인 물으며 사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가?"를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의 이웃인가?"를 탁자 위에서 이론적으로 질문하고 답을 찾느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는 과연 누구의 이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과연 그 누구에게라도 한 번이나 제대로 사랑의 이웃이 되어준 적이 있는가?"를 자신에게 물으며 누구에게든 지금 나의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오늘복음의 요점은 하느님사랑의 참된 의미와 누구의 이웃이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참된의미를 가장 완벽하게 가르쳐주시고 실천하여 보여주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담고 있었던 하느님의 참된 사랑의 깊은 의미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시고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참된 이웃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신 대로 깨닫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한 주간, 참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머리로가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는 한 주간을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