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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13 05:52
   평신도 주일(마르 13, 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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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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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33 주일 

2015년 11월 15일

평신도 주일(마르 13, 24-32)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마르 13, 32)

교회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냅니다. 평신도란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으로서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를 지칭합니다. 오늘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함에 있어서 평신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확인하는 날입니다.  오늘 평신도 주일을 맞으며 평신도 사도직을 나는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은 종말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 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참으로  찾기가 힘듭니다.  지금과 같이 경제적인 불확실성이 사회를 덮고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키에르 케고르는 ‘우리를 죽음에로 이끄는 병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절망이다.’라고 말했나 봅니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지배하는 사회 곧 죽음으로 나아가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어둠과 절망의 시기에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메세지가 있습니다. 바로 이사야서  43장 1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느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구원의 댓가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메달아 죽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우리의 마음 속에 깊이 와 닿지 않습니다. 그분을 나를 위해서 돌아가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죽음이 나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야의 말씀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그분이 나를 구원했다고 그러니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어떠한 순간에도 그분께서는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의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당신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절망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하느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서 나를 구체적으로 지명하여 불렀으니 나는 당신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당신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느님의 소유물입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닌 바로 ‘나’를 하느님께 지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종말’은 예수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오시는 날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 때는 어느누구도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묵시록 6장을 보면 종말이 오면 오늘 복음의 내용과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종말’의 내용을 깊이 살펴보면, 이 종말이 우리를 심판하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묵시록의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종말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부정적인 요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부정적인 요소들이 적용되는 대상은 자신의 삶을 주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적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 종말은 천국에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에 굴복하여 살아은 사람들은 숨을려고 하지만 성령의 뜻에 따라 살아온 사람들은 밖으로 뛰어 나가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숨는 사람들과 기쁨과 행복에 넘쳐서 두려움없이 주님을 맞기 위해서 뛰쳐 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느쪽에 속하는 사람일까요?

비록 오늘 복음의 말씀이 겉으로는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갖게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들으면서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깊은 사랑이 있슴을,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순한 양의 모습도 그리고 엄한 선생님의 모습도 함께 갖고 계십니다. 이 두 모습 모두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구체적인 표시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종말’이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개념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희망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구원하셨기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분이 나를 지명하여 부르셨기에 나는 하느님의 소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것도 하느님의 소유물인 나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음을 마음 속 깊이 간지하며 살아갑시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바오로 사도의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 38-39)는 말씀을 간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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