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강론
2015년 5월 31일 일요일
마태 28, 16-19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8-20)
어떤 분들이 저에게 신부님께서는 성경을 다 이해하십니까? 하고 물으십니다. 저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부분보다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시간이 지나고 기도를 하면서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생겨나고 동시에 이미 알고 있었던 말씀들도 더 깊은 뜻을 깨닫기도 합니다. 아마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일인가 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전례적으로 지난 주일까지 부활시기를 보내고 다시 연중시기를 맞이해서 그 첫 주일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교리는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두었다가 나중에 깨닫는 것처럼 궁극적으로 인간적 이해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신비라고 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역사적 사건이었던 ‘예수님의 사건’을 통해 ‘계시’된 것으로서, 인간 인식의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겸손하게 인내심을 갖고서 하느님께로 다가서는 사람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교리입니다.
하느님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요한 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이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전달 되었으면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고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기에 인격이란 이제 우리에게서 조금씩 사라져가는 단어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록 세상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한 것을 간직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 사랑의 표현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성자의 사랑을 느껴보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시지 않고 당신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 땅을 떠나시기 전에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8-20)하고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씀이 바로 그분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우리의 ‘보호자’로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이 성령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또 다른 존재양식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시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살아가도록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느님을 자신의 지성으로 완전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유한함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열어 보여 주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열어보여 주심을 우리는 ‘계시’라고 말하며 우리의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계시종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와 관련해서 전해오는 일화하나를 소개하면서 강론을 마치고자 합니다.
하루는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삼위일체 교리를 어떻게 하면 잘 깨닫고 설명할 수 있을까 하여 고민하면서 바닷가를 산책하고 계셨다. 하루종일 바닷가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한쪽 구석 백사장에서 아이들 세명이 역시 하루종일 모래성을 쌓아 놓고 작은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부으며 놀고 있었다. 성인께서 가까이 가서 “애들아, 너희들 무엇을 하고 있어"라고 물으시자, 어린이들은 “저희들은 저 바닷물을 이 모래성에 모두 퍼담으려고 합니다"라고 답했다. 성인께서 웃으시며 다시 “애들아, 너희가 죽을 때까지 해도 그 일은 못 끝낼 것이야"라고 하시자, 아이들은 “그래도 선생님께서 삼위일체교리를 깨닫는 일보다 더 쉬울 거예요"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우리가 삼위일체의 교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에 대한 큰 교훈을 줍니다. 바닷물을 퍼담으려면 그릇이 바다만큼 커야 하고 하느님의 신비인 삼위일체 교리를 깨달으려면 인간의 지능이 하느님의 지능만큼 커야 하는데, 이것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따라서 일단은 받아들이고 그 나머지는 주님의 은총에 기대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기적을 만드는 믿음은 바로 불가능한 이해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