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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31 01:43
   참 행복을 사는 길(마태 5,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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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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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인 대축일에

2015년 11월 1일 일요일

참 행복을 사는 길(마태 5, 1-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 12)


오늘은  일요일임과 동시에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성인들의 천상 영광을 기념하며 잔치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오늘 특별히 하느님과 함께 하늘나라에서 영광을 누리며 살고 있는 모든 성인 성녀들의 삶을 본받고자 다짐합니다. 특별히 이날은 우리가 전례 중에 잘 기억하지 않는 성인들을 더 많이 기억하는 날이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묵시록의 저자는 하늘나라에 있는 사람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전합니다. 우리는 이 숫자와 관련해서 여러가지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숫자의 의미는 숫자 그대로 십 사만 사천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열 두 부족을 상징하는 12와 신약의 열 두 사도를 상징하는 12를 곱하면 144가 되는데 여기에 1000을 곱하여서 나온 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성경에서 수의 상징이 의미하는 것을 고려하면 한정된 숫자가 아닌 많은 혹은 무함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늘나라에는 누구나 조건에 합당한 삶을 살아간다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정원제가 아닌 자격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하늘나라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삶의 모습인  8가지의 삶의 길을 제시합니다. 이 8가지의 행복의 길은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주시는 첫 번째 가르침인 산상수훈의  첫 부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가르침이 산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산상수훈’(마태 5-7장)이라고 말합니다. 루카복음 사가는 이 가르침이 평지에서 일어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평지설교’라고도 말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새로운 모세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모세 사이에는 유사점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모세와 에수님께서 산에 오르신 것은 동일하지만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올라간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기 위해서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오늘 산에 오르셔서 당신이 직접 가르침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모세와 예수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진복팔단은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태오 복음에는 5개의 큰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는데 그 첫 번째 가르침의 첫부분에서 예수님은 8가지의 행복에 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를 우리는 ‘진복팔단’이라고도 말합니다. 참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8가지의 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늘나라가 바로 그들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동사는 현재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이라도 하느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간다면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늘나라가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행복선언은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슬퍼한다고 다 모조건 다 복을받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슬퍼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일을 하다고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을 보고서 슬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두고 슬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동사의 시제를 보면, 슬퍼하는 것은 현재형입니다. 그리고 그 보상은 미래입니다. 그런데 현재 행복하다고 합니다. 이 동사의 시재형에 관심을 두면 비록 지금 슬퍼해도 미래에 이루어질 일 때문에 지금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슬퍼하는 것은 과거에 일어난 일 때문이거나 현재의 일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슬퍼지만 그 슬픔은 축복받은 슬픔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위로가 보장된 슬픔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의 행복선언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주님안에서 성실한 삶을 통해서 얻게되는 열매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따듯한 마음을 뜻합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은 하느님의 땅을 차지 할 것이라고 합니다.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상속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곧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바로 아들됨의 성품입니다.

네번째는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현재 하느님의 세상적인 정의의 개념을 넘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말합니다. ‘거룩함’에 대한 열망입니다. 이러한 열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에는 만족하게 될 것이기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자비로운 사람’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기에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을 입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입을 사람입니다. 행복합니다. 

여섯번 째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보게될 것입니다. 세속에 물든 마음, 세상적인  출세나 물욕이나 권력과 명예에 물든 마음이 아닙니다. 세상을 넘어선 마음입니다. 사탄의 유혹을 넘어선 마음입니다. 하느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일곱 번째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이유는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상속받는 사람도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평화를 이루는 사람과 온유한 사람’은 동일한 성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결국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온유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일 것입니다. 

여덟번 째의 행복은 바로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합니다. 첫 번째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받는 선물과 동일한 선물을 받습니다. ‘하늘나라’입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가 있겠습니다. 이 진복팔단은 결국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갖게 되는 행복으로 귀결될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마음이 가난함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해결의 종착점이 바로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지향점이 참 행복이라면 그 행복의 길은 ‘가난한 마음’입니다. 이 가난한 마음은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살아가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 마음이 우리를 참 행복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향해서 살아가다 보면, 이 8가지의 행복은 저절로 우리에게 오게될 것입니다.

모든 성인의 날을 맞으며 성인들께서 살아가신 이 참 행복의 길을 우리 역시 함께하는 한 주간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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