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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13 23:26
   연중 제29 주일 강론 -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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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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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 주일 강론 

2016년 10월 16일 일요일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6-19)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8-20)


어떤 분들이 저에게 신부님께서는 성경을 다 이해하십니까? 하고 물으십니다. 저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부분보다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시간이 지나고 기도를 하면서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생겨나고 동시에 이미 알고 있었던 말씀들도 새로운 의미를 혹은 더 깊은 의미를 깨닫기도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일인가 봅니다. 

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여러 사람들로부터 피정의 느낌에 대해서 듣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피정 중의 체험때문에 일상 생활이 무섭다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믿음입니다. 유혹은 언제나 새롭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신 ‘말씀’이십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참으로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본질은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겠다.’는 그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의 핵심이 바로 함께함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전달 되었으면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고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기에 인격이란 이제 우리에게서 조금씩 사라져가는 단어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록 세상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 사랑의 표현이 오늘의 말씀인 것입니다. 

성자의 사랑을 느껴보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시지 않고 당신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 땅을 떠나시기 전에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8-20)하고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씀이 바로 그분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우리의 ‘보호자’로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이 성령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또 다른 존재양식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시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살아가도록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느님을 자신의 지성으로 완전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유한함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열어 보여 주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열어보여 주심을 우리는 ‘계시’라고 말하며 우리의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계시종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기적을 만드는 믿음은 바로 불가능한 이해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믿음이 삶을 통해서 구체화되는 주간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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