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마르 10장 17-30
오늘복음의
이야기는 마태오와 루카복음서에도 실려있습니다. 위 두 복음서는 아마도 마르코 복음서를 참조했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복음서에는 어떤 사람이라고 하지만 마태오 복음서에는 어떤 부자 청년이라고 말합니다. 또 루카복음서에는
어떤 권력자라고 말합니다. 세 복음서에 각기 다른 사람으로 표기하고 있는 이유는 이 복음서를 써고 있는
저자가 속해 있던 공동체의 성격과 저자의 신학적인 사상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차이에
주목을 하기보다는 복음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원래의 의미에 주목합니다.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어떠한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재산도
있고 계명도 잘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먼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유다인들이 조상대대로 지켜오던 계명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시면서
이러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임을 알려주십니다. 이 사람은 자신은
어려서부터 이러한 계명들을 다 지켜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젊은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눈 여겨 보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딱 하나가 있는데 가서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재물을 많이 갖고 있었기에 이 말씀을 듣고서 울상이 되어 슬퍼하면서 떠나갔습니다. 이를 두고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늘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저
나가는 것이 더 쉽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루카복음서에 나오는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의 비유를 생각해 보면 잘 이해가 됩니다. 그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살인이나 도둑질 같은 큰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간에 누워 병으로 괴로워하며 굶주리고 있던 라자로와 같은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모르는 체했기 때문에 죽어서 그런 벌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 말에 제자들은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고 서로 수군댑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는 부자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한가지의 조건은 가난한 이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 준다는 전제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복음 역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의 기본 정신(사실 율법서 자체는 근본적으로 이런 사랑의 실천을 강조합니다,)을 무시하고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지키는 소극적인 삶만으로는 부족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는 것’을 포함하는 적극적 실찬하는 신앙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