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7/2016
현자가 많음은 세상의 구원이며 현명한 임금은 백성의 안녕이다
지혜서 6:24
A multitude of the wise is the safety of the world,and a prudent king, the stability of the people.
Wisdom 6:24
오늘부터는 로마의 오현제에 관해 묵상해보겠습니다
영국의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번은 ‘오현제’가 다스리는 시대를 이렇게 극찬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역사상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했던 시기를 골라보라고 한다면, 그는 망설임없이 도미티아누스의 죽음부터 콤모두스의 등극 사이의 시기를 고를 것이다”
도미티아누스황제가 죽고 이후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황제인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가리켜 후세의 역사가들은 ‘오현제’(다섯명의 현명한 황제)라고 부릅니다. 오현제의 시기는 네르바가 제위에 오른 서기 96년부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한 서기 180년까지로 이 시대에는 로마 제국이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으며 경제도 번영하고 영토또한 최대의 판도에 이르렀습니다. 문화는 속주 각지에 파급되어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오현제의 시대를 연 첫번째 황제는 네르바입니다. 법학자이며 원로원 의원이었던 그는 폭군이었던 도미티아누스가 갑자기 살해되자 원호원에 의해 일사천리로 차기 황제에 추대됩니다. 당시 66세의 노령에 황제에 오른 그는 도미티아누스의 폭정을 수습하기 위해 힘을 쏟습니다. 그는 자녀가 많은 시민에게 토지를 나눠주었고, 부유한 집의 자녀교육을 위해 국가기관을 설치하였으며, 우편 제도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게 하였고, 로마시의 곡물 분배제를 실시하고, 낡은 수도시설을 정비하여 민생을 안정시킵니다. 원로원과도 잘 융합하였으며 군대 경험이 없었던 관계로 당시 게르마니아 총독으로 군대의 신임이 두터웠던 트라이아누스를 양자로 삼아 그를 후계자로 지명하여, 군에 관련된 전권을 위임합니다. 이로써 네르바 이후부터 혈연관계에 의해 이어지는 세습관계가 깨지고, 유능한 사람을 양자로 들여 그 사람에게 왕위를 양위하는 제도가 생겨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황조가 바로 네르바로부터 코모두스까지 이어지는 안토니우스 왕조입니다. 상당히 노령이었던 네르바는 이년동안의 짧은 통치를 마치고 자식없이 자연사합니다. 그는 커다란 업적을 남긴 것은 아니었으나 능력있는 후계자를 양자로 삼아 제위를 물려주는 후계자 지명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과 로마제국의 최전성기의 문을 열었다는데 큰 의미가 둡니다. 한편 그는 도미티아누스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종식시켰고, 이런 조치의 일환으로 파트모스섬에 유배되었던 사도 요한도 풀려날 수 있게 됩니다.
네르바에 이어 서기 98년 황제에 오른 트라야누스는 에스파니아출신으로 여러 관직을 두루 경험하였고, 97년 네르바의 양자로 지명될 때는 게르마니아의 총독이었습니다. 장군으로써의 능력이 탁월하였던 그는 황제에 오른 후, 군사 원정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그가 황제로 재위할 당시,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는데 브리타니아, 이베리아 반도, 다키아 지방을 포함하여 일시적으로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앗시리아, 이집트 남부까지 정복하여 로마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어냅니다. 그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바닥난 재정을 정복전쟁으로 확보한 속주들로부터 받은 세금으로 회복하고 로마시미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그는 빈곤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세금 부담을 경감시켰으며, 공설 시장을 세웠으며 공공사업들을 많이 진행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넓어진 제국의 영토를 모두 관장하기 위해 전국 각지로 뻗어나갈 수 있는 도로들을 확대, 정비하였고, 수많은 행정개혁들을 실시하여 제국의 번영에 힘을 쏟습니다. 트라이아누스 황제 시절을 살았던 로마인들은 신분과 빈부의 차이를 뛰어넘어, 어려움없이 평화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이렇듯 내정과 원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원로원과 시민들로부터 '지고의 황제'라는 의미의 'Optimus Princeps'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그는 64세에 약 20년 제위를 마감하고 병사합니다. 아들이 없었던 그는 같은 에스파니아출신인 하드리아누스를 양자로 삼은 후 후계자로 지명하여 자신의 뒤를 잇게 합니다. 그의 제위기간중 유대인 소요가 일어나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황제 숭배를 강요 하였고, 혹독한 박해는 어느 정도 완화하였지만 트라야누스칙령을 발표하여 간헐적인 박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태평성대를 이야기할 때 중국의 요순시대, 로마의 오현제시대를 꼽습니다. 어진 임금이 다스렸던 요순시대, 현명하고 행정적 수완이 뛰어난 군주가 다스렸던 오현제시대.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 시대의 황제를 롤모델로 삼습니다. 한비자는 ‘다른 나라에 침략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부국강병해야한다고 주장하며 “힘에 의존하는 것을 마다하고 덕을 베풀어 민중을 감화시키려는 발상은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트라야누스는 한비자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먼저 부국강병에 힘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엄격하게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인에 대한 무자비한 박해는 완화시켰습니다
주님,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는 아니지만 집안에서, 신앙공동체에서, 일터에서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청합니다. 무엇보다 당신을 경외하는 지혜를 갖춘 현명한 신앙인이 되기를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