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2016
와서 보시오
요한 1:46
Come and see
John1:46
오늘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중 한 사람인 필립보에 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갈릴래아 벳사이다 츨신인 필립보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고 추측합니다. 그는 공관복음에서 사도들의 명단이 나올 때만 언급이되나 요한복음에서는 몇군데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부르신 다음날 갈릴래아에 가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시자 그에게 “나를 따라라”하고 이르십니다.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사이다출신입니다. 이 필립보는 나타나엘을 만나 말합니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타니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하자 필립보는 “와서 보시오”라고 말합니다(요한복음1장)
필립보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안드레아와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서 응답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필립보는 이들과 한 동네 사람이기 때문에 늘 같이 만났을 겁니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겠습니까? 안드레아와 베드로는 필립보에게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당연히 했을 것입니다. 필립보가 안드레아와 베드로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분을 따라다니는데 그분은 누굴까? 나도 그분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우리에게 간절함이 있으면 그 간절함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필립보의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그 간절함이 예수님을 만나게 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예수님을 꼭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필립보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나면 삶이 바뀝니다. 예수님을 만나고도 과거의 삶이 계속 된다면 진정으로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을 만나면 첫사랑을 느낀 사람처럼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평안과 기쁨과 삶의 목적과 의미가 생깁니다. 필립보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그의 친구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필립보는 나타나엘을 만나자 그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고 부정적으로 대답합니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정신부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아로 가기로 작정하시고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십니다. 필립보에게는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졌음이고 예수님께서는 의지를 가지시고 그를 만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자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로써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에 이어 예수님의 초기 제자중 한 사람이 됩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말은 없지만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에 주저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감격을 나타니엘을 만나며 드러냅니다. 나타니엘은 그의 첫번째 전도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이라는 고백을 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확신하였음입니다. 그는 ‘나를 따라라’라는 한 마디에 예수님의 신원을 알아보고 고백할 수 있는 그의 영적 갈망과 혜안이 놀랍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나자렛이라는 작은 고을에 무슨 인물이 나겠냐고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나타니엘에게 필립보는 강하면서 짧게 이렇게 말합니다.“와서 보시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논쟁도 설명도 필요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의 신념은 나타니엘을 결국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였고, 그의 이런 면때문에 예수님으로 하여금 직접 찾아와 제자로 삼으신 것은 아닐까요?
주님, 소설 연금술사에 나오는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자네를 도와준다네”를 인용한 대통령의 “간절하게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말을 이렇게 바꿔보고 싶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면 주님께서 만나주시고 도와주신다”
주님, 간절함이 당신을 만나게 했고, 또 간절함을 가지고 친구를 전도하는 필립보를 봅니다. 그리고 저도 전도하기에 앞서, 피정을 권유하기에 앞서 간절한 기도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나서 “와서 보시오”라고 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