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Now I rejoice in my sufferings for your sake, and in my flesh I am filling up what is lacking in the afflictions of Christ on behalf of his body, which is the church.
It makes me happy to suffer for you, as I am suffering now, and in my own body to do what I can to make up all that has still to be undergone by Christ for the sake of his body, the Church.
아래는 한국성령봉사자 최해진 모이세 형제님의 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선교활동 과정에서 많은 고난을 격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고난을 고난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였습니다. 고난 자쳬가 기뻐할 일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기뻐하였습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라는 말은 고난을 격는 일이 그리스도신자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격는 고난이 교회를 위해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고난이 온 인류에게 이익이 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 두 표현을 조심해서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처음 읽으시면 상당히 익숙치 않은 단어표현일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그럴 분이 아니시다... 라는 확신을 갖고 곰곰히 읽고 읽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고난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고, 자신이 그리고 우리가 격는 고난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임을 믿는다 는 뜻입니다.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라는 말은 영과 구별되는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고를 아끼지 않아 땀이 흐르는 '몸' 을 표현합니다.
무슨 이유에서건 혹은 어떤 이유인지도 모르는 체 우리는 매일 걱정하고 고난을 맞이합니다. 고난을 피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워낙 쓰나미같이 밀려오는 근심 걱정이라 아무리 발버둥치며 도망을 가보지만 결국 나의 등뒤를 덮치고 맙니다.
피하지 못할 것이라면 쓰나미 서핑을 합시다. 우리 믿음을 굳건히 하여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고난들에 쓰러질지언정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