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3/2016
너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뎌라.
집회서 2:4
Accept whatever happens to you, in periods of humiliation be patient.
Sirach 2:4
집회서의 저자는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주님을 경외하라고 말합니다.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면 마지막에 번창하게 되니 각자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더라도 참고 견디라고 말합니다.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되기 때문입니다. 질병과 가난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자비를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현대인의 습성 가운데 하나가 조급증입니다. 특히나 한국 사람들은 무엇이든 빨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거기에다 항상 '남들보다 더' 잘해야하고 신속해야합니다.그러다가 실패하면 사회적으로 루저가 되고 우울증에 빠지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됩니다. 여유로움과 기다림을 마음에 담아두질 못하였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시간과 인내가 뽕잎을 비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과정보다 속도를 중요시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인생의 성공은 조급함과 성급함을 다스리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참을 인(忍)이라는 한자를 마음에 새기며 살았습니다. 참을 인(忍)이라는 글자속에는 마음 심(心) 위에 칼도(刀)자가 있습니다. 칼로 마음을 베는 것 같이 아플 수 있어도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닥친 어떤 어려움이나 슬픔, 신분의 하락이 일어날지라도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시련은 그 시련이 힘들기 때문에 참는 것은 아닙니다. 희망을 기다리기에 참습니다. 마침내 찾아 올 날, 시련이 종식되고 희망으로 바뀌게 되는 날을 믿기 때문입니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고 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련과 고통중에 하느님께 호소하고 성급하게 응답을 기다립니다. 응답이 늦다고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그러면서 하느님의 부재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하느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하느님을 신뢰하기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을까요?. 이럴때일수록 더욱 성령의 열매인 ‘인내’를 적극적으로 청해야 할 것입니다. 낙심과 체념이 우리를 괴롭힐지라도 모든 것은 ‘이또한 지나가리라’는 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가 시련중에 인내하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참고 인내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아픔을 드리고 시련을 드려도…..
주님, '참고 견뎌라'라는 말속엔 눈물이 배어 있습니다. 참고 견디기위해 홀로 베갯잇을 눈물로 적셔야하기도 하고 한숨이 노래가 되기도 합니다.
하오니 주님, 그 흐르는 눈물의 시간속에서도 당신의 위로의 말을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하면 제가 그 시간을 조용히 견딜 수 있을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