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권 몬시뇰의 가톨릭교회교리서 해설 (8)
개인의 자유 결단에 의한 응답돼야
주님 말씀통해 신앙 성장 노력 필요
신앙의 궁극 목표는 ‘지복직관’
발행일 : 2003-05-18 [제2348호, 6면]
■ 1편, 1부, 3장
제1절 Ⅲ. 신앙의 특성(계속)신앙의 자유(160) : 신앙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격적인 응답이 되려면, 그 어떠한 인간 외부로부터 유래하는 강제력에 의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한 응답이어야 한다.
본
디 신앙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이 부르시는 하느님과 자유로이 응답하는 인간 사이의 친교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과
신앙인 외의 다른 인간이나 사회나 국가가 간여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나타난 무수한 사례가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여 왔다. 이런 현상들에 대하여 지난 바티칸 공의회가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문」을 발표하자 엄청난 파문이
야기되었다. 선언문의 부제목(副題目)이 「종교 문제의 사회적 시민적 자유에 대한 개인과 단체의 권리」라고 명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회가 인간이 어떤 종교를 믿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도 하느님 앞에서 책임이 없다고 선언한 것처럼 오해하였다.
이
선언문의 내용은 신앙 문제에 대하여 타인이나 사회나 국가가 무엇을 믿어라 무엇을 믿지 말라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인격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므로 교회는 이런 간섭을 부당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선언하였다. 간단히 말해서 국가나 사회가 신앙 때문에
신자나 교회를 박해하지 말라는 선언이다.
교리서가 말하는 신앙의자유는 신앙행위의 본질적 특성을 지적하는 말이지, 사람이 무엇을 믿든지 말든지 하느님의 심판 앞에서도 자유스럽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신앙의 필요성(161) : 최후만찬에서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한 17, 3)하셨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16, 16) 하셨다.
신앙의 항구함(162) : 신앙은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주시는 선물이지만, 인간은 이 선물을 자신의
잘못으로 잃어버릴 수도 있다. 신앙의 대상과 내용이 인간의 자연 이성으로 자명하게 파악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여건과 상황에
따라서 신앙이 흔들릴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이 꾸준하게 신앙 안에서 살면서 끝까지 항구하려면 하느님의 말씀으로 신앙을 키우고 또
신앙을 키워주시도록 하느님께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 22).
신앙은 영원한 생명의 시작(163-165) : 하느님의 계시에 의하면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생을
받아서 현세에 생활하다가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고 이 사실을 승복하는 것이 신앙이다. 따라서 신앙의 궁극적
목표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완전히 인식하는 지복직관(至福直觀)이다.
성서는 신앙의 상태와 지복직관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 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1고린 13, 12).
요
한 복음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하느님 아버지와 그 외아들 예수를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라면(요한 17, 3), 현세에서 신앙으로
하느님을 불완전하게 나마 알아모시는 것이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주기』때문이다(히브11, 1).
흔히들 우리가 현세에서 신앙으로 살다가 죽은 후에 천당에
간다고 소박하게 말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신앙에 진입함으로써 이미 우리 안에 영생이 시작되고 있으며, 우리 신앙의 종점에서
하느님을 완전히 봄으로써 영원한 생명 안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