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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22 06:56
   회개와 멸망의 기로에 서서(루카 13, 1-9) -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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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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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811
2016년 10월 22일 토요일
회개와 멸망의 기로에 서서(루카 13, 1-9)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루카 13, 2))

교황님께서 이 땅을 방문하신지도 2년이 지났습니다. 교황님 방문 당시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교황님의 방문과 함께 우리 가톨릭 교회가 좀 더 가난하고 열린 교회로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변화가 없습니다.  벽을 허물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과 이와는 대조적으로 입으로는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점점 더 벽을 견고하게 쌓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신앙인으로 살아오면서 신앙인답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하게 하십니다. 사제로 살아로면서 사제답게 살고 있는 지에 대해서 질문하게 하십니다.  ‘답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쌓은 벽을 허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벽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벽이며 자신이 주인이 되기 위해서 주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벽입니다. 입으로가 아닌 삶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참으로 어렵습니다. 자신이 쌓은 벽을 스스로 허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은 ‘돌아감’입니다.  원래의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쌓았던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인간이 자신의 교만함으로  깨어버렸던  하느님과의 관계를 자신이 돌아감으로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회개’는 바로 돌아감을 의미합니다. 허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회개’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합니다. 당시의 갈릴래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서 로마에 항거하는 폭동을 일으켰었고 빌라도는 이를 잔인하게 진압하곤 했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사람들이 죽는 일들도 빈번하게 발생했을 것입니다. 특히 성전에 제물을 바치는 성전축제 기간 중에 이러한 학살 사건이 있었슴을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갈릴래아 사람들은  이렇게 죽어가 사람들을 두고서 사람들이 죄를 지어서 하느님의 벌을 받아서 죽었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들의 생각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시면서 ‘회개’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변에 여러가지의 사고가 발생하고 있슴을 봅니다. 이러한 사고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고로 죽어가 사람들을 두고서 그들이 죄가 많아서 이러한 재앙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서 다 죄인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이러한 사고의 희생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누구나 다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고 이러한 죽음이 언제 자신에게 다가올 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살이있다는 것은 내가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드시면서 신앙을 갖고 살아가면서도 그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즉 회개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맞게될 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또한  “땅만 버릴 이유가 없다.”는 말씀을 통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가 땅의 양분 만을 빨아먹어 땅을 못쓰게 만들기 때문에 이러한 나무를 잘라 버리듯이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구원의 기회마저 빼앗는 일이 일어나서는 않됨을 강조하십니다.

어떤 포도밭 주인이 열매를 못 맺는 무화과 나무를 두고서 자신의 포도 재배인에게 말합니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루카 13, 7-9)

이 말씀을 읽으면 참으로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 무화과 나무와 같은 위기의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포도밭 재배인과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참으로 감사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 되어준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남을 칭찬하거나 격려하는 것에는 참으로 인색합니다. 오히려 능력이 뛰어나고 뛰어난 사람을 보면, 질투하고 시기합니다.  그들을 모함하기도 합니다.  이웃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남의 잘못됨을 기뻐하기 보다는 그 처벌할려는 사람을 설득하여 다시 한번 기회를 더 갖게 하는 따뜻한 사람을 만납니다. 

많은 분들이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입니다. 즐거움보다는 슬픔이 정의보다는 부정의가 그리고 사랑보다는 증오와 미움이 가득찬 세계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희망보다는 절망이,  빛보다는 어둠이 먼저 보입니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보면서 사랑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이익이나 야망이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 따라서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하기 보다는 도구적으로 대하는 세태인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논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비인격화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위기라고 말합니다. 말은 많습니다. 하지만 실천은 없습니다. 교황님께서 한국을 다녀가신지도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교황님의 방한이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가 중요합니다. 교회가, 사회가를 따지기 이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의 손 끝이 타인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지금 회개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지금을 넘겨서 회개의 기회를 잃고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바로 지금 오를 회개하는 하루가 되기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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