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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5-20 19:51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34 -36>이브 콩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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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3,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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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34 -36>이브 콩가르


조명받지 못했던 '성령론'의 현대적 발전 이끈 선구자


'성령론의 재발견'


많은 신자들은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그 세 번째 위격인 성령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느님으로 고백되는 성부,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고백되는 성자와 달리, 성령에 관해서는 그 어떤 명확한 진술을 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비둘기 정도의 이미지가 떠오를 뿐이다. 성령은 과연 누구인신가?

 

 성령이란


 성령의 위격적 특성은, 그 본질 자체로 하느님이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느님 현존의 고귀한 선물과 은총이라는 데에 있다. 성부 하느님의 영이며 또한 성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을 신비로이 주관하며, 인간의 내면에 거주해 우리의 성화(聖化)를 이끌어 가신다. 미사 안에서 '사도신경'과 함께 선택적으로 고백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은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位格)이신 성령을 "생명을 주시는 주님"으로 고백하며, 그분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영광을 받으신다"고 선포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바로 "성부 안에 근원을 두고 성자 안에서 주어진 '생명'은 교회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내밀하게 전달됨"(「가톨릭교회교리서」, 683항)을 의미한다. 성령께서는 이렇듯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지는 통로인 동시에 그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 자신이시다.


 이처럼 성령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신앙 안에서 명백하게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라는 위격적 존재로 고백된다. 그러나 11세기 이후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서방 교회의 역사적 전통 안에서 오랜 기간 성령에 대한 관심과 인식과 성찰이 충분치 못한 채 간과돼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 이유를 굳이 찾아본다면 무엇일까? 동방 교회의 신비주의적 신학 경향과는 달리 모든 것을 논리적 언어로 설명하고자 했던 이성주의적 신학의 대두와 그리스도 중심주의적 관점의 지나친 강조, 그리고 법률주의적 교회관의 성립 등을 거론할 수 있겠다.


 가장 큰 신학적 문제는, 성부와 성자의 경우와 달리, 성령의 위격적 실상이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 시기 동안에, 성령은 주로 비둘기라는 종교미술적 상징에 의해서만 묘사돼 왔다. 이러한 이유로, '아버지'와 '아들'의 형상으로 분명히 표현되는 성부와 성자의 경우와 달리, 성령은 그 위격적 실상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 '얼굴 없는 존재'로 머물게 된다.


 카파도키아의 교부인 대 바실리우스(329/330-379) 성인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근접할 수 없는 하느님의 거룩한 힘으로서 이 세상 안에 실제적으로 작용하시는 분이시다. 즉, 유한한 인간의 이성으로써 도저히 파악할 수도 없고 인간의 능력으로 감히 접근조차 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무한한 실재(實在)요 신비이지만, 이러한 비가시적인 하느님의 실재를 우리가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사랑의 표지요 선물이 바로 성령이시다. 그런데 이 사랑의 선물이란 하느님 밖의 그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본질 자체이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내어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기 전달에 있어서, 그 전달 행위의 직접적 원리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그 주체가 되신다. 그리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이러한 자기 전달 행위의 극치는 바로 성령의 인도에 따른 성자의 강생 신비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구원 역사를 통해 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시고 인도하시는 성령께서는 바로 '교회의 영혼'(anima Ecclesiae)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리고 교회의 가시적 영역을 넘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온 세상 안에 충만하여 활동하시는 성령을 가리켜서는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the universal presence and activity of the Holy Spirit)이라는 신학적 용어를 사용해 표현한다. 이는 성령의 활동 중 가장 대표적인 특성 중 하나이다.


 이미 구약성경의 지혜서 1장 7절은 "온 세상에 충만한 주님의 영은 만물을 총괄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요엘 예언서 3장 1절에서는 선택된 이들 위에 내려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이끌어가시던 주님의 영께서 이제는 온 세상 만민 위에 임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설교를 통해,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실 것이라던 구약성경의 예언이 드디어 성령강림을 통해서 성취됐음을 선포한다(사도 2,16-21 참조).

 

 성령론의 현대적 흐름


 1897년에 이르러, 교황 레오 13세(재위 1878-1903)는 성령에 대한 첫 회칙인 「그 신적 책무」(Divinum Illud Munus)를 발표했고, 성령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사랑, 그리고 기도를 강조했다. 또한 성령강림대축일 전 9일기도를 바칠 것을 결정하여 온 교회에 선포했다.


 1962-1965년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성령론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공의회는 현대 세계 안에서 교회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진지한 숙고와 성찰을 통해 새로운 교회상에 대한 전망들을 제시했는데,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동안 교회 역사 안에서 간과돼 왔던 성령론적 통찰의 재발견을 위한 중요한 단초들을 제공했다. 물론 공의회 전체는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에서 이루어졌지만, 교회와 세상 간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성령론적 전망이 다시 새로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내부는 물론이고, 교회의 가시적 영역 밖에서까지 활동하시는 성령의 신비로운 작용에 대한 자각이 이뤄졌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부터 새로이 이뤄진 성령론적 성찰과 전망은 공의회 이후에도 계속해서 전개, 발전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다.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를 뒤이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임무를 승계한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는 성령에 대한 신학적 연구의 심화와 신심의 계발을 통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승과 보완이 계속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오로 6세는 1975년에 「현대의 복음선교」(Evangelii Nuntiandi)를 발표했는데, 이 교황 권고는 성령론적 관점에서 복음화의 사명을 설명함으로써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문헌이다. 문헌은 성령을 통해 복음이 세상 깊은 곳까지 침투해들어감을 역설한다.


 이후 1982년 로마에서는,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의 교의(dogma) 정립 과정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콘스탄티노폴리스공의회(381년) 개최 1600주년과 에페소공의회(431년) 개최 1550주년을 기념하는, 성령론에 관한 대규모의 국제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그동안 이루어진 성령론의 발전에 대해,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과 신학자들의 주장을 교회 전체적 차원에서 통합하고자 시도했던 매우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된다. 여기에서는 성령론에 관한 거의 모든 주제가 총망라되어 많은 발표들이 이뤄졌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론의 발전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의 1986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을 통해 보다 명시적으로 구체화돼 드러나게 됐다. 이는 현대 교도권의 가르침 중 유일하게 성령에 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 성령론의 현대적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이브 콩가르 추기경.



 이브 콩가르의 공헌

 이러한 성령론의 현대적 발전 과정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바로 프랑스의 신학자 이브 콩가르(Yves Congar, 1904-1995) 추기경이다. 그는 도미니코회 소속 사제로서, 예수회원 앙리 드뤼박(Henri de Lubac, 1896-1991)과 함께 프랑스의 20세기 '신(新)신학'을 전개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신학 전문위원으로 임명돼 공의회 문헌 작성에 직접적으로 참여했으며, 개인적으로는 교회론과 교회 일치(ecu menism), 그리고 성령론 분야에서 뛰어난 저술들을 남겼다. 콩가르는 서거 1년 전인 1994년에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콩가르는 위에서 언급한 1982년의 로마 국제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행하였는데, 그것은 이 회의 직전인 1979-1980년에 그가 총3권으로 이루어진 성령론에 관한 명저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Je crois en l’Esprit Saint)를 출간함으로써 성령론의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을 널리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 세권의 책은 아직까지도 현대 성령론의 교과서로 간주되는 불후의 명저이다. 국내에서는 백운철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의 번역으로 2004년에 그 1권이 번역, 출간됐다(가톨릭출판사). 다음호에서는 이 세권의 책 내용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성령론적 그리스도론


 총 3권으로 이루어진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는 1982년 로마에서 개최된 성령론에 관한 대규모 국제 학술회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의 1986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의 발표에도 어느 정도 배경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로써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이후 이루어진 성령론의 발전이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활짝 꽃을 피우는 시점에 도달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 발표된 교회 공식 문헌들은 성령에 관해 언급하면서, 무엇보다도 삼위일체의 구원 경륜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자와 성령 간의 분리 불가능한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강조는 한편으로 성령론적 전망의 개진을 통해 '그리스도 중심주의' 관점을 보완해서 구원 경륜적 삼위일체의 신비를 재확인하고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그리스도 중심주의'에 대한 대안적 의미에서의 이른바 '성령 중심주의'의 출현을 경계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현대 신학의 흐름에서 성령론의 발전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나, 그 본질이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대체하는 차원에서 '성령 중심주의'를 주창하는 데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즉, 이제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않고, 대신 '성령'에 관해서만 말하겠다는 식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의 구체적인 신앙생활 속에서도 이러한 차원의 성령 운동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일이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이루어진 성령론 발전의 흐름 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보다 더 넓은 성령의 구원 경륜을 말하는 일부 극단적 주장이 출현했고, 교회 교도권에서는 이러한 흐름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년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 29항에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양자택일을 해야 할 존재가 아니시다"는 점을 매우 강조해 지적한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2000년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Dominus Iesus)에서도 "성령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활동의 외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병행하는 것도 아니다"(12항)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즉, 성령론이 그리스도론에 반대되거나 그리스도론을 대체하는 흐름에서 전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재확인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부터 이루어진 성령론의 재발견과 새로운 발전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파스카 신비의 구원론적 의미를 삼위일체론적 차원에서 재숙고함에 있어 새로운 성령론적 성찰이 요청된다는 맥락에서 시작된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핵심 문헌인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Gaudi-um et Spes) 22항이 의도하듯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파견된 영으로서 보편적이고 우주적 차원에서 구원 사업을 위해 활동하시는 성령의 작용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따라서 성령의 보편적, 우주적 현존과 작용은 구원 역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사건의 유일회적 특수성과 맺게 되는 불가분의 관계 안에서 단일한 구원 경륜을 이루어 나가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리옹의 이레네우스(130/140?~200/202?) 교부는 성자와 성령 곧 '하느님의 두 손'(the Two Hands of God)이라고 주된 저서 「이단 반론」(Adversus Haereses)에서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독일의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1933~) 추기경은 주된 저서 「예수 그리스도」에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생명에 성령을 통하여 참여함"이라고 말함으로써 단일한 삼위일체적 구원 경륜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자와 성령의 불가분한 관계를 잘 설명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성령론은 반드시 그리스도론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그리스도론은 필연적으로 성령론적이어야 한다고 상호보완적 측면에서 말할 수 있다. 이브 콩가르 추기경은, 이처럼 삼위일체의 구원 경륜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자와 성령 간의 불가분한 상호보완적 관계를 강조하는 현대 신학의 흐름과 분야를 가리켜 '성령론적 그리스도론'이라고 부른다.

 

 성령 청원 기도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 총 3권은 '성령론'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도, 동시에 '성령론적 그리스도론'의 기초를 놓은 저서이기에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먼저 이 책의 제1권에서, 콩가르는 성령론의 성서적 근거와 역사적 개관을 파노라마식으로 제시한다. 즉, 구약성경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하느님의 영에 대해, 또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님의 영에 대해 고찰하며, 이 '영' 개념이 신약성경을 거쳐 초대 교회에 이르러 어떻게 보다 분명한 위격적 차원의 '성령'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는지를 잘 설명한다. 또한 중세의 전례 기도문 안에서 '성령 청원 기도'(Epiclesis)가 자리잡아가게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제2권과 제3권에서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고찰이 이루어지는데, 특히 제3권의 후반부는 성체성사에서의 '성령 청원 기도'에 대해 상세하게 다룬다.


 사실, 성령은 전례와 성사 안에서 사람들에게 작용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킨다. 성령은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를 상기해 '기념'(Anamnesis)하게 하며, 마침내 그분을 현존케 해 그리스도의 신비를 실현하는 거룩한 힘으로 작용한다. 특별히 '성령 청원 기도'란, 성체성사의 전례 안에서 성령을 부르며 하느님의 힘과 능력이 임하기를 청원하는 기도를 말한다. 견진성사에서는 견진성사를 받는 사람에게 도유하며 성령 특은의 날인을 청하는 예식이 가장 핵심적이다. 사제로 서품되는 성품성사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성령의 임하심을 청하는 주교단과 사제단의 안수 기도이며, 이 예식과 연결된 마지막 축성 기도를 통해 후보자는 비로소 사제로 서품되는 것이다.


 성체성사에서 '성령 청원 기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한 축성/기념과 더불어 가장 핵심 부분을 구성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미처 그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성체성사의 '성령 청원 기도'에 두 가지가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성령의 이름을 부르며, 봉헌된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로 축성해주시도록 기원하는 '축성 기원'의 '성령 청원 기도'다. 감사기도 제2양식에서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두 번째는 성체와 성혈의 축성과 거양 이후에, 다시 같은 성령을 부르며 교우들의 일치를 기원하는 '일치 기원'의 '성령 청원 기도'다. 감사기도 제2양식에서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미사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the body of Christ)을 우리 안에 직접 받아 모시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받아 모신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한 몸을 이룸으로써, 이제 '그리스도의 신비체'(the mystical body of Christ)인 '교회'를 비로소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비이며, 또한 그 신비를 청하는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인가?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는, 이처럼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인 성령에 관한 신학과 초대 교회의 가르침을 역사적으로 개관하며, 특히 교회의 성사와 전례 안에서 작용하는 성령의 신비로운 현존과 활동에 대해 상세히 고찰해 본격적인 연구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매우 높게 평가받는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교회론과 성령론을 연결시킨 통합적 전망을 제시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그런데 교회론적 공의회라고 일컬어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그저 단절적, 배타적 관점에서만 보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안을 향한 교회'Ecclesia ad intra)와 ''밖을 향한 교회'(Ecclesia ad extra)라는 관점에서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재해석하고자 시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성령의 작용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성령께서는 성사와 전례 등과 같은 '안을 향한 교회'의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활동하시지만, 그 신비로운 현존과 작용은 교회의 가시적, 제도적 경계를 넘어 '밖을 향한 교회'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는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도 통찰력 있는 전망을 제시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호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작용


  프랑스의 이브 콩가르 추기경은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 3권의 저서를 통해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작용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온 세상에 충만한 주님의 영은 만물을 총괄하는 존재"(지혜 1,7)라는 성경 말씀처럼, 성령께서는 교회 내부에서뿐 아니라 세상 안에서도 우주적인 활동을 통해 신비로이 역사하신다. 이러한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다음과 같이 성경적, 신학적 관점에서 단계적으로 고찰해 볼 수 있다.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하시는 성령


 콩가르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기전달이 성령을 통해 이루어짐을 말한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그 고귀하고 자비로운 선물의 원리가 바로 성령이다. 이처럼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안에서 결정적인 성취를 이루게 된다.


 성령께서는 성모 마리아의 동정 잉태(참조: 마태 1,18-20; 루카 1,35)를 통해 그리스도 육화의 신비를 인도하신다. 또한 성령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 내려오셨다(마르 1,10-11 참조).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공적 활동을 시작하며 기쁜 소식을 선포하실 때, 이사야 예언서 61장 1-2절을 인용해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루카 4,18)고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시며 아버지의 선한 뜻이 이루어짐을 기뻐하신다(루카 10,21 참조). 이처럼 성령께서는 나자렛 예수님의 지상 생애 중에 함께하시며 많은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권능이 드러나게 하셨다.


 그런데 이처럼 나자렛 예수님과 함께하셨던 성령께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과 다른 존재가 아닌, 항상 동일한 성령이시다. 이는 역사의 예수님과 부활하신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 안에서 발견되는 동일한 성령의 종말론적 활동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통해 그분을 믿는 이들에게 마침내 성령이 주어질 것임이 선포된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7,37-39). 그러므로 파스카 사건으로 나아가는 맥락에서, '파라클레토스', 즉 보호자이며 협조자, 또한 위로자이고 중개자이며 변호자인 "진리의 영"(요한 14,17; 15,26; 16,13), 곧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다. 예수님께서 청하면, 아버지께서 파라클레토스 성령을 보내시어 영원히 제자들과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요한 14,16 참조).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처음 하셨던 말씀은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21)라는 인사와 더불어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는 것이었다.

 

 교회의 영혼이신 성령


 성령 강림 사건(사도 2,1-13 참조)을 통한 사도들의 성령 체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파라클레토스 성령을 보내겠다고 하신 약속의 실현이었다. 이는 또한 구약 성경에 나타난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다.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설교에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주실 것이라는 구약 성경의 예언(요엘 3,1-5 참조)이 성령 강림을 통해 성취됐음을 선포한다(사도 2,14-21 참조). 나자렛 예수님에 의해 정초된 교회가 이제 성령 강림을 통해 온 세상에 드러나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 교회의 성장과 발전 과정에 늘 함께하며 인도하신다. 오순절의 첫 세례 사건 때, 베드로 사도는 회개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군중들이 이에 응답해 3000명이 넘는 이들이 제자들에게 세례를 받았다(사도 2,37-41 참조). 이러한 사도들의 복음 선포와 찬미 안에 성령이 가득 충만했다(사도 4,23-31 참조). 사도들은 성령의 힘에 의한 여러 가지 기적과 놀라운 일들을 일으켰다(참조: 사도 5,12-16; 8,4-8). 사도들은 박해를 받는 중에도 성령에 가득 차 용기 있게 대답하였으며(사도 4,8 참조), 고난을 기쁨으로 여겨 굴하지 않고 복음 선포에 매진하였다(참조: 사도 5,40-42; 13,50-52).


 스테파노의 경우, 은총과 능력이 충만했다. 그래서 스테파노와 논쟁하던 사람들은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 때문에 그에게 대항할 수가 없었다(사도 6,8-15 참조). 심지어 죽기까지 박해를 받으면서도 스테파노는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사도 7,54-60 참조). 베드로와 요한은 안수를 통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받게 했다(사도 8,14-17 참조). 베드로 사도의 복음 선포를 듣는 모든 이들에게 인종과 민족의 장벽을 뛰어넘어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내렸다(사도 10,44-48 참조). 성령께서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의 선교 여행을 인도하시고 그들과 함께 동반하신다(사도 13,1-12 참조). 성령께서는 바오로의 선교 여행 중에 바오로와 그 일행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 주셨다(사도 16,6-7 참조).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의 제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셨다(사도 19,1-7 참조). 바오로 사도는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예견하면서도, 이를 피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향한다(사도 21,10-16 참조).


 이렇듯 성령은 참으로 교회를 이끄는 생명의 원리로 작용하신다. 성령을 체험한 초대 교회의 공동생활 양식은 어떠했는가?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으며,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사도 4,32-33). 바로 이것이 초대 교회 공동체가 성령의 힘으로 이루었던 놀라운 친교와 일치의 실상이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하느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며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다. 하느님의 영은 그 백성과 늘 함께하시어, 세상을 향한 교회의 복음 선포 사업을 인도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마치 '교회의 영혼'과도 같이 생명력을 불어 넣으신다. 생명의 원리이신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신자들의 마음에 머무르시고 그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모아주신다. 성령께서는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시고 친교와 봉사로 일치시켜 주신다. 또한 교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선물로 교회를 가르치시고 이끄시며 당신의 열매로 꾸며 주신다.

 

 마침 영광송을 바치며


 지상 여정 중에 있는 교회는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순례하는 교회다. 교회의 첫 시작에서부터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그 모든 과정 중에 성령께서는 교회와 함께 계시며, 교회를 끊임없이 쇄신하고 거룩하게 해 진리로 이끄신다. 성령의 재촉을 받아 교회는 그리스도를 온 세상 구원의 근원으로 세우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실현되도록 협력하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종말론적 완성을 향한 하느님 나라의 성장을 위해 교회를 인도하신다.


 성령께서는 또한 교회의 '가시적 경계선을 넘어' 온 세상 안에서도 충만하게 활동하신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 헌장」에서 이미 제시된 바와 같이, 성령께서는 교회의 가시적 경계 밖에서도 인간 구원을 위해 신비로이 활동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또 인간의 궁극 소명도 참으로 하나 곧 신적인 소명이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 파스카 신비에 동참할 가능성을 주신다고 믿어야 한다"(22항).


 콩가르는 성령께서 이 세상 어디에서나 마치 바람이 불고 싶은 데로 부는 것처럼 활동하시며,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신비로이 보편적인 작용을 하신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성령께서는 이 세상에 하느님을 향해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을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마침내 하나로 결합시키실 것이라는 전망이야말로 콩가르가 제시하는 성령론의 마지막 결론이다. 바로 여기에서 성령론과 종말론이, 그리고 성령론과 삼위일체론이 서로 결합하게 되는 것이다.


 이브 콩가르 추기경이 거듭 강조하는 것은, 성령께서 참으로 모든 인간을 새롭게 하신다는 점이다. 오늘날 인간 세상의 어둠과 고통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되는 시점에서, 콩가르가 제시하는 성령론은 우리에게 마치 한줄기 빛과 같은 희망을 던져준다. 이 세상 모든 죄악과 절망을 이기시고 마침내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충만하게 드러나리란 희망을 간직하며, 이브 콩가르 추기경과 함께 간절한 기도를 바친다. '마침 영광송'(doxology)을 통한 기도야말로 콩가르의 명저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의 최종 결론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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